금융시장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채권시장과 주식시장. 파리협정 체결 이후 세계 금융시장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는데요. 특히, 채권에 녹색이란 라벨이 붙기 시작했고 이로 인한 프리미엄 효과를 뜻하는 ‘그리니엄(greenium)’이란 신조어가 등장했죠.

지난 3년간 전 세계 녹색채권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2021년 12월 기준, 세계 녹색채권 발행규모는 4,350억 달러(한화 약 515조원)로 2018년 1,712억 달러 대비 약 254% 증가했는데요. 지난해 녹색채권 발행규모 2,970억 달러와 비교해 현 시장에 발행자와 투자자들이 몰려오고 있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녹색채권의 성장잠재력은 무궁무진한데요. 하지만 녹색채권이 이렇게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게 바로 정확한 분류체계 덕분이란 사실, 알고 계셨나요?

 

녹색에 대한 명확한 정의 ‘녹색채권 시장 급성장’ 도와 📊

최근 녹색채권 규모가 성장할 수 있던 것은 ESG 경영 확산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기인했습니다. 더불어 채권시장 형성 초기 ‘녹색(green)’에 대한 정의와 분류가 명확했던 것도 한몫했는데요. 명확한 분류체계 덕에 채권발행자와 투자자 모두 일관성 있는 정보를 제공받아 신뢰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 왼 2021년 세계 녹색 시장 현황 오 녹색채권 발행 국가 지도

지금까지 녹색채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던 수많은 에너지, 건물, 교통 등 프로젝트들과 자산들 중에서 어떤 기준에 근거하여 ‘녹색’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요? 그건 바로, 택소노미(Taxonomy)라는 명확한 녹색분류체계가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채권발행자가 원할경우, 국제자본시장협회(ICMA)와 기후채권기구(CBI)에서 마련한 녹색분류체계인 택소노미에 해당되는 녹색사업은 녹색채권을 통해 자금 조달이 가능합니다.

ICMA의 녹색채권원칙에서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 ▲오염방지 및 제어, ▲자원 및 토지의 지속가능한 관리, ▲생태계 다양성 보존, ▲청정교통, ▲지속가능한 물 ▲폐수 관리, ▲순환경제 ▲녹색건물 등을 녹색사업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CBI는 ▲에너지, ▲교통, ▲물, ▲건물, ▲토지이용 및 해양자원, ▲산업, ▲폐기물 및 오염관리, ▲정보통신(ICT) 8개 분류체계별로 녹색 사업을 상세히 명시하고 있는데요.

위 두 기관에서 상세하게 구체적인 녹색사업을 제시하고 있기에, 해당 투자자는 프로젝트가 녹색사업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할 수 있으며, 신규 투자자에게는 투자방향 설정에 도움이 되는 등 택소노미 그 자체가 가이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요. 즉, 택소노미는 시장 내 모든 참여자에게 녹색사업의 신뢰성을 부여하는 등 전세계 녹색경제와 탄소중립 추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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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 집행위 홈페이지 갈무리

EU 택소노미 두고 이해관계자간 첨예한 대립 중 🇪🇺

유럽연합(EU)은 지속가능한 투자처를 규정하기 위한 새로운 ‘택소노미’를 만들고 있습니다. 국가 단위의 택소노미로는 EU가 전 세계 최초로 시도 중인데요. 이른바 EU 택소노미라 불리는 규정입니다. EU 택소노미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수자원 및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과 보호, ▲순환경제로의 전환, ▲오염방지 및 통제,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의 보호와 복원 등 6대 환경목표를 설정했죠.

EU는 택소노미를 통해 녹색산업에 더 많은 투자를 이끌고, 해당 산업 성장과 함께 환경적 성과도 추구한단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2022년 2월까지 택소노미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현재는 원자력 발전을 ‘지속가능한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할 것인가를 놓고 EU 회원국 간 분열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일·룩셈부르크·포르투갈·덴마크·오스트리아는 원자력 발전이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인데요. 반면, 프랑스·폴란드·헝가리·체코는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에너지로 분류할 수 있단 입장입니다.

 

© Lukáš Lehotský Unsplash

대부분 현안에 EU 회원국은 대체로 견해가 일치했으나, 원자력 발전과 관련해서는 좀처럼 타협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요. 이는 자국 산업 및 에너지 안보 등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특히, 원자력 문제가 프랑스와 독일 양국 지도자의, 국내 정치적 입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요. 최근 대선 공약으로 원자력 발전 확대 정책을 들고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탈원전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올라프 숄츠 신임 독일 총리 모두 한치도 물러날 수 없는 상황입니다.

 

+ 한국형 택소노미도 개발 중에 있어! 🇰🇷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도 한참 만들고 있는데요. 이미 초안과 수정안은 공개됐고, 최종 의견 수렴을 거친 후 조만간 최종안이 공개된다고. EU와 마찬가지로 원자력 발전을 녹색 산업으로 분류할 것인가를 놓고 말이 많은데요. 여기에 환경오염물질 저감장치를 부착한 석탄화력발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녹색으로 분류할 것인가 놓고도 논란이 있었다고.

 

© IEA 제공

왜 다들 택소노미에 민감한 거야? 💶

택소노미. 즉, 녹색사업에 대한 분류법(Taxonomy)은 시장 내 개인을 포함한 투자자, 정부, 금융기관 등 모두에게 기준을 제공해 시장 전체의 투자와 자산 측정에 관련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또 다른 평가 기준이 되는데요. 실례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 Rock)은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한 투자 전략으로 카본 베타(Carbon Beta) 도구와 기후변화 평가 방법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죠. 국내에서도 연기금은 기후 대응 관련 환경·사회적 영향을 평가를 통해 관련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등 택소노미는 투자운용과 포트폴리오 설계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택소노미는 단지 금융 투자자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향후 각국 정부 정책을 비롯해 국제무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요. 택소노미에 포함되지 않은 산업은 정부 정책부터 자금 조달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배제될 수 있기에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즉, 택소노미의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인데요. EU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여러 개발도상국 국가가 자국 택소노미 제정하려는 상황인 만큼, 앞으로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