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돼지고기를 수확한다면 어떨까요?

공상과학(SF) 영화 속 이야기인 것 같지만, 최근 영국 생명공학 스타트업 물렉사이언스(Moolec Science·이하 물렉)가 실제로 돼지고기 단백질이 포함된 콩을 개발해 화제입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물렉은 유전공학기법을 활용해 ‘피기 수이(Piggy Sooy)’란 콩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피기 수이는 돼지 유전자와 대두 유전자가 결합된 것이 특징입니다. 겉은 일반 대두와 똑같지만 콩을 자르면 돼지고기 색깔과 비슷한 분홍색을 띕니다. 회사 측은 콩 속 단백질 가운데 26.6%가 돼지고기 단백질이라고 밝혔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그리니엄이 살펴봤습니다.

 

단백질 등 고부가가치 물질 생산하는 작은 식물공장, 분자농업! 🧪

대체단백질 산업에 혁신을 이끌어낸다는 목표 아래 2020년 설립된 물렉. 아르헨티나에 기반을 둔 생명공학 대기업 바이오세레스(Bioceres)에서 분사해 설립된 기업입니다.

이 스타트업이 주목한 기술은 바로 분자농업(Molecular Farming) 기술입니다. 물렉은 올해 1월 미국 장외주식시장 나스닥(NASDAQ)에 상장된 첫 분자농업 기업이기도 합니다.

분자농업은 유전자조작을 통해 작물에서 유용한 고부가가치 단백질이나 효소 등을 대량 생산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식물을 고부가가치 물질의 생산공장으로 활용하는 것.

기존 농업의 경우 작물 자체를 재배하는 반면 분자농업은 특정물질 재배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이 식물 자체의 생산성 및 기능성을 높였다면, 분자농업은 식물을 이용해 다른 물질을 생산하는 개념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 돼지 유전자와 대두 유전자가 결합된 피기 수이가 실험실에서 자라는 모습. ©Moolec

분자농업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 절감입니다. 커다란 공장을 짓는 대신 식물을 작은 공장으로 활용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진단시약의 일종인 아비딘(Avidin)은 기존 계란 대신 옥수수에서 생산하면 생산단가가 10분의 1이나 절감됩니다.

의약품이나 화장품 등 바이오 분야에서는 분자농업을 활용한 사례가 여럿 있는 편입니다.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로 알려진 ‘지맵’과 고셔병 치료제인 ‘엘레라이소’가 대표적입니다.

 

英 물렉 “분자농업, 배양육보다 비용·에너지 모두 ↓ 맛 ↑” 🤔

물렉은 분자농업 기술을 사용해 대체단백질의 가격을 기존 동물성 단백질과 동등한 가격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회사 측은 분자농업 기술이 “식물성 대체육 및 배양육 등 다른 대체육 제조 방식보다 최소 10배는 더 비용효율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렉은 분자농업이 식물성 대체육과 배양육의 단점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단 점을 강조합니다. 식물성 대체육은 만들기 쉬우나 실제 고기맛을 내는데 어렵습니다. 반면 배양육은 맛은 고기와 똑같으나, 제조 과정이 까다롭고 생산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물렉은 피기 수이가 배양육보다 비용과 에너지를 덜 투입하면서도 고기와 비슷한 맛과 질감 그리고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별도 배양시설이 필요한 방식보다 생산량을 쉽게 늘릴 수 있다고 회사 측은 덧붙였습니다.

물렉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개스톤 팔라디니는 “전 세계에서 연간 3억 5,000만 톤의 콩이 재배되고 있다”며 “우리의 신품종은 단순히 그중 일부만 대체해 심으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에 물렉이 선보인 피기 수이는 돼지와 대두 유전자가 결합됐습니다. 콩의 안쪽이 분홍색인 것은 돼지 유전자가 미오글로빈과 같은 철 함유 분자를 가진 단백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미오글로빈은 고기에서 붉은색을 띄게 하는 물질입니다.

 

▲ 영국 생명공학 스타트업 물렉이 분자농업 기술을 사용해 개발한 피기 수이란 이름의 콩은 자르면 돼지고기 색깔과 비슷한 분홍색을 띈 모습을 볼 수 있다. ©Moolec

“지적재산권 문제로 구체적 방법은 공개 안 해”…소고기맛 완두콩 개발 중 🐄

아밋 당그리 물렉 최고과학책임자(CSO)는 “분자농업을 통해 종자에서 높은 수준의 단백질을 발현시키는데 성공했다”며 “식품과학계에 새로운 역사를 남겼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당그리 CSO는 “이같은 생산(방식)은 의약품·화장품 등 광범위한 산업에서 단백질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허나, 물렉은 지적재산권 문제를 이유로 콩에 어떤 돼지 유전자를 추가했는지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물렉은 피기 소이에서 단백질 분말을 추출해 주요 기업에 판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회사 측은 다음 프로젝트로 소고기 단백질을 함유한 완두콩 식물도 개발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물렉은 본사가 위치한 영국을 넘어 네덜란드·미국·우루과이 등에서 분자농업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물렉은 분자농업 기술을 사용해 홍화에서 치즈 생산에 사용되는 효소인 키모신(chymosin)을 생산한 바 있습니다. 해당 꽃은 올해 4월 미 농무부(USDA)로부터 수입허가를 받았습니다.

 

▲ 개스톤 팔라디니 물렉 공동설립자 겸 CEO가 실험실에서 배양 중인 분자농업 작물들을 들고 있는 모습. ©Moolec

대체육 4번째 주자로 떠오른 분자농업 단백질…FDA “엄격한 관리 필수” 🥩

한편, 미국 비영리단체 굿푸드인스티튜트(GFI)는 분자농업이 대체단백질 시장에서 식물성 대체육·발효육·배양육에 이어 4번째 주자가 될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GFI에 의하면, 현재 분자농업 기술을 사용해 단백질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전 세계 12개사에 이릅니다.

가령 미국 푸드테크 스타트업 모티프푸드워크스(Motif FoodWorks·이하 모티프)도 분자농업 기술을 사용해 소고기 근세포 속 미오글로빌 유전자를 옥수수에 주입해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을 개발 중입니다.

마찬가지로 미국 푸드테크 스타트업인 노벨푸드(Nobell Foods)도 분자농업 기술을 사용해 대체 유제품을 생산하려고 연구 중입니다.

노벨푸드는 2021년 시리즈 B 투자에서 7,500만 달러(약 966억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해당 투자에는 빌 게이츠의 기후펀드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BEV)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뉴질랜드 푸드테크 스타트업인 미루쿠(Miruku)는 분자농업을 사용해 대체 유제품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20년 설립된 이 회사는 올해 3월 시드투자(창업 극초기 투자)에서 240만 달러(액 30억 9,000만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GFI에 의하면, 미루쿠는 아시아태평양(아태) 지역에서 유일하게 분자농업 기술을 개발 중인 기업입니다.

다만, 분자농업 기술은 개발 자체가 까다로울뿐더러 안전성 등 법적 규제는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4월 미 식품의약국(FDA)은 분자농업 기술을 통한 대체단백질 생산에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FDA는 성명에서 “신종 식물 품종이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다”며 엄격한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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