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후 투자라 불리는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Inflation Reduction Act)이 미국 상원을 통과한 데 이어, 지난 8월 12일(현지시각) 미국 하원을 통과했습니다.
상원에 제출된 IRA 법안에 따르면 에너지 안보, 기후변화 대응, 보건의료 강화 등에 7,390억 달러(약 965조원)에 달하는 재정 지원을 중점으로 하는데요. 그 중 전기차, 배터리, 재생에너지 확대 등 기후대응에 배정된 자금은3,860억 달러(약 502조원)로, 전체 예산 규모의 50% 이상을 차지합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IRA 법안이 미국을 탄소중립으로 이끌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을 발의한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IRA 법안이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40% 줄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상 최대 기후 투자,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가량 감축 가능해 📉
척 슈머 원내대표는 지난 7월 27일(현지시각) IRA 법안 소개 당시 에너지 시장조사전문기관 에너지이노베이션(EI·Energy Innovation)의 분석을 인용했습니다.
EI는 IRA 법안이 2030년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GHG)을 2005년 대비 최대 41%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구체적으로 EI는 IRA 법안을 통한 미국 내 재생에너지 투자 및 환경정의* 투자 조치가 2030년 미국 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5억 톤에서 최대 28억 톤까지 감축시킬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는 2005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37~41% 감축하는 것인데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에너지 연구 기관인 프린스턴대 제로랩(ZERO Lab)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제로랩은 IRA 법안이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을 38억 톤가량 줄여, 2005년 대비 약 42%를 감축할 것으로 예측했는데요.
미국 시장조사기관 로디움그룹(Rhodium Group)에 이와 비슷하게 31%에서 44%까지 감축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이번 IRA 법안 통과가 미국 내 온실가스 감축과 더불어 세계 기후변화 대응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단 기대가 나옵니다.
*환경정의(Environmental Justice) : 환경보호와 규제 측면에서 인종, 민족, 경제적 지위를 막론하고 개인·단체·지역사회를 환경적 위험으로부터 동등하게 보호하는 것.
에너지 안보·기후대응, 5가지 분야로 정리한 IRA 법안 📝
앞서 말한 것처럼 IRA 법안의 예산안 중 절반 가량은 ‘에너지 안보 및 기후대응’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IRA 법안은 미국 역사상 단일 기후투자로는 최대 규모인데요. 미국 현지에서는 1970년 대기오염방지법(Clean Air Act) 제정 이후 미국 환경 법안으로서 최대의 성과란 평가도 나오는 중입니다.
IRA 법안은 재정 지출을 통해 기후문제에 대응한단 것이 큰 특징입니다. 기존 환경 법안은 규제 강화 또는 신설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해온 것과 비교됩니다. 민주당은 IRA 법안 내 에너지 안보 및 기후대응 관련 투자를 크게 ▲소비자 에너지 비용 절감, ▲에너지 안보, ▲경제 탈탄소화, ▲취약계층 집중 투자, ▲탄력 있는 농촌 지원 등 5가지 분야로 설명했는데요.
8월 7일(현지시각) 상원 최종의결 결과 반영한 금액을 기준으로 각각 어떤 세제 혜택 및 보조금 등을 받을 수 있는지 정리했습니다.
1️⃣ 소비자 에너지 비용 절감 💸
가장 대표적으로 전기차 등 친환경차 구매 시 세제 혜택이 있습니다. 중하위 소득자를 대상으로 하며, 중고차와 신차에 한해 각각 4,000달러(520만원)와 7,000달러(910만원)의 한도가 적용됩니다. 미국 내에서 조립된 친환경차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요.
오는 2024년부터는 미국 현지에서 조립된 친환경차라고 해도 배터리에 사용된 광물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되지 않았다면 혜택이 제한됩니다.
이밖에도 가정 내 에너지 비용 절감을 위해 ▲저소득 가구 가전제품 전기화(Electrification)** 및 에너지 효율적 개조에 90억 달러 지원, ▲히트펌프, 태양광 패널, 전기 온수기 등 고효율·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소비자 세액 공제, ▲취약계층 주택 에너지 고효율 개조에 10억 달러의 인센티브를 지원합니다.
**전기화(Electrification):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술을 전기를 사용하는 기술로 대체하는 것.
2️⃣ 에너지 안보 🇺🇸
미국 내 태양광, 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시설의 생산세액공제(PTC)에 300억 달러,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세액공제(ITC)에 100억 달러가 지원됩니다. 여기에는 수소, 직접공기포집(DAC) 플랜트, 원자력발전소 등이 포함되는데요. 미국 내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를 가속화해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는 것을 목표합니다. 즉, 해외 화석연료가 아닌 자국 재생에너지를 통해 에너지 안보를 향상시킨단 뜻인데요.
또한, 미국내 내연차 생산 공장이 친환경차 생산 공장으로 전환할 경우 인센티브가 지급됩니다. 미국 내 친환경차 생산시설 건설에는 200억 달러의 예산이 배정됐습니다.
이외에도 미 에너지부(DOE) 산하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 내 재생에너지 연구 가속화를 위해 20억 달러가 지원됩니다.
3️⃣ 경제 탈탄소화 🔌
IRA 법안은 에너지 생산, 운송, 건물, 농업 등 경제 모든 부문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지원금을 제공합니다. 이를 각각 살펴본다면.
- 에너지 생산 ⚡: 주정부, 전력회사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위한 300억 달러 규모의 인센티브 및 대출금 제공.
- 운송 🚛: 친환경 연료·차에 인센티브 및 세제 혜택 제공.
- 제조 🏭: 화학, 철강, 시멘트 등 주요 탄소배출 산업에 대한 60억 달러가량의 인센티브 및 세제 혜택 제공.
- 정부 🏛️: 연방정부의 친환경 기술 조달에 90억 달러 지원. 또한, 미군 다음으로 연방배출량이 많은 미국 연방우체국(USPS)의 친환경차 구매에 30억 달러가량의 예산이 배정.
- 민관파트너십 💸: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민관파트너십 ‘녹색은행(Green bank)’에 270억 달러 지원. 지원금 중 80억 달러는 소외지역에 배정.
4️⃣ 취약계층 집중 투자 🧑🤝🧑
소외된 지역사회를 비롯해 취약계층을 위한 집중 투자도 이뤄집니다. 환경오염 및 기후변화 관련 불평등한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소외지역 및 지역사회 주도 프로젝트에 3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는 환경‧기후정의 보조금(Environmental And Climate Justice Grants)이 대표적입니다.
이외에도 ▲안전하고 저렴한 교통 접근성에 30억 달러를 지원하는 이웃접근 및 형평성 보조금, ▲항구의 무공해 장비·기술 구매 및 설치에 30억 달러를 지원하는 항만 대기오염 저감 교부금, ▲학교버스·쓰레기 수거차 등 친환경 대형차량에 대한 10억 달러 지원 등이 포함됐습니다.
5️⃣ 탄력 있는 ‘농촌(Rural Communities)’ 지원 🧑🌾
IRA 법안은 2020년 기준 미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1%를 차지하는 농업 부문에도 자금을 지원합니다. ▲기후친화적 농업(Climate-Smart Farming)에 200억 달러 이상, ▲산림 보존, 나무심기 등에 50억 달러, ▲해안 서식지 보존 및 복원에 26억 달러, ▲지속가능한항공유(SAF) 등 바이오연료 국내 생산을 위한 보조금 및 세제 혜택 등에 예산이 배정됐습니다.
+ 메탄배출 기업에 대한 세금도 매길 예정! 💸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 분야는 아니지만, IRA 법안의 세제 개편 분야에는 메탄배출세 도입이 포함됩니다. 메탄(CH4)은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효과(GWP)가 21배나 강력한 온실가스인데요.
해당 법안에 따르면 앞으로 기업들은 석유·천연가스 시추 시에 누출되는 메탄을 모니터링할뿐더러, 메탄 배출 1톤당 점진적으로으로 900~1,500달러의 세금을 부담해야 합니다.
기억하니? 사실 미국 NDC 목표는 50%였단 것 😢
한편, IRA 법안이 사상 최대 규모의 기후 투자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IRA 법안을 통해 미국이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0%까지 감축해도, 미국 정부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에 제출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그보다 높은 50% 감축이기 때문입니다.
NDC는 파리협정에 따라 협정 당사국이 자발적으로 설정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입니다. 미국은 지난 2021년 4월 22일, 지구의 날에 맞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NDC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2005년 배출량 기준으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의 50-52%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그에 비하면 IRA 법안으로 달성할 40% 감축 효과는 10%가량 부족한 것.
이 때문에 IRA 법안이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제안한 더나은재건 법안(BBB Act)과 비교해 규모와 효과 면에서 부족하단 지적도 나옵니다.
1조 7,500억 달러(약 2,068조원) 규모의 재정 투자가 담긴 BBB 법안. 그 중 재생에너지 및 기후대응 분야에만 5,000억 달러(약 650조) 가량의 예산이 배정됐는데요. BBB 법안은 IRA 법안에 비해 약 1,000억 달러 가령 더 많은 재정이 책정됐던 것.
이와 관련해 프린스턴대 제로랩은 BBB 법안이 시행될 경우 2030년 탄소배출량을 2005년 대비 46%까지 감축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무엇보다 IRA 법안이 전 세계가 화석연료로 회귀하는 가운데 나왔단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린 가운데 최근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연합(EU) 회원국 일부는 석탄화력발전소를 다시 가동했는데요.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국인 러시아 또한 서방의 대러 제재로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난항을 겪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의 대규모 기후 투자는 전 세계의 기후행동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미국 최대 전력업체 단체인 에디슨전기협회(EEI)의 워너 박스터 회장은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세제 혜택 확대는 단순히 배출 감축 방안 시행뿐만 아니라, 그 속도를 높이는 데도 실질적인 도구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또한 IRA 법안이 “국제 무대에서 기후지도자로서 미국이 새로운 신뢰를 얻게할 것이며, 에너지 전환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다른 나라들에게 납득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평가했습니다.
+ 자칫 석유·석탄 부활 신호탄 될까 우려도 나와 ⛏️
한편, 민주당은 민주당 내 일부 상원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타협안도 일부 수용했습니다. 앞으로 연방정부는 알래스카, 멕시코만 지역 등에서 정부 토지 임대를 허용해 향후 10년간 석유와 천연가스를 시추할 수 있도록 보장합니다.
다만, 이와 관련해 로디움그룹은 해당 타협안을 고려해도 동법의 친환경에너지 규정이 이를 상쇄하기 때문에 2005년 대비 40%가량 감축이 가능하다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