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가장 강력한 지속가능성 규제의 표결이 부결되며 좌초가 유력해졌습니다.
EU 상반기 의장국인 벨기에 정부에 따르면, 지난 28일(이하 현지시각) 이사회 상주대표회의에서 실시된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 표결은 EU 27개 회원국 중 13개국 기권·1개국 반대로 끝내 부결됐습니다.
앞서 CSDDD 표결은 이달 9일과 14일 두 차례 연기된 바 있습니다.
CSDDD는 인권과 환경에 대한 기업의 실사와 정보 공개 책임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국내에서는 대개 ‘공급망실사법’으로 불립니다.
일단 EU 이사회에서 부결된 이유로 CSDDD 최종 승인이 무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3자 협상 타결된 EU 공급망 실사법에 제동 건 독일…이유는? 🇩🇪
CSDDD는 기업이 전체 공급망에서 인권·환경에 대한 실사 요구사항을 설립하고, 실사 이행 뒤 관련 내용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법안에 따르면, 기업에게는 공급망 내 강제노동, 삼림벌채 등의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할 의무가 부여됩니다. 규정 위반 시 연간 매출액의 최대 5%까지 벌금으로 부과될 수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비(非) EU 국가도 조건 충족 시 CSDDD 적용 대상에 포함됩니다.
CSDDD는 애초 작년 12월 유럽의회·EU 이사회·EU 집행위원회의 3자 협상이 타결되며 입법이 기정사실화됐습니다.
그러나 지난 7일 EU 이사회 상주대회회의에서 독일과 이탈리아가 막판에 기권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양국이 기권할 경우 상주대표회의 표결에 필요한 가결 요건의 충족이 어렵습니다.
EU 이사회 상주대표회의 표결은 가중다수결 투표(QMV)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회원국 수의 55% 이상, EU 전체 인구의 65% 이상을 충족해야 합니다.
이번 사안의 열쇠를 쥔 국가는 독일입니다. 독일 의회 내 정당인 자유민주당(FDP)이 기업의 과도한 부담을 우려하면서 반대 입장을 표명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기권 또한 독일의 협상 결과물입니다. 한편, 이번 협상 결과 독일은 ‘EU 포장재 폐기물 지침’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권 13국·반대 1국으로 증가 “CSDDD 축소 제안 나와” ⚖️
지난 28일 표결에서는 회원국 내 CSDDD 반대 흐름이 더 공고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투표는 비공개로 진행됐습니다. 허나, 로이터통신에 의하면 독일·이탈리아를 포함해 13개국이 기권, 1개국은 반대를 표결했습니다. 당초 CSDDD에 찬성 입장이었던 프랑스도 지지를 철회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벨기에는 소셜미디어(SNS)에 “의장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중다수결 투표에) 필요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고 성명을 냈습니다.
이어 “우리는 이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회원국이 제기한 우려를 해결할 수 있을지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당 대목은 규제 수정을 암시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프랑스는 이미 CSDDD 적용 대상을 변경하는 수정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좌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소속 마농 오브리 유럽의회 의원은 자신의 SNS에 통해 “프랑스 정부가 적용 인원 기준을 직원 5,000명 이상으로 변경하는 안”을 제안했다고 밝혔습니다.
CSDDD 현안의 적용 대상은 ▲직원 수 500인 이상(역내) ▲연 매출 1억 5,000만 유로 이상(역내외) 대기업입니다.
프랑스가 제안한 수정안 적용할 경우, CSDDD 적용 기업은 현안 대비 90%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에 CSDDD 마감 시한 촉박 “사실상 좌초란 분석도” 😢
회원국의 의견이 가까스로 조율돼 재투표를 진행한다 해도 남은 일정상 CSDDD는 이미 사실상 폐기된 수순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현재 CSDDD는 이사회 상주대표회의 표결 이후에도 유럽의회 승인 절차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회는 오는 6월 선거를 앞두고 곧 회기가 마감됩니다. 이르면 4월 회기가 마감됩니다. 이에 따라 CSDDD 승인 마감일 또한 3월 15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2주 안에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CSDDD 법안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회기 내 법안이 승인되지 않으면 CSDDD 제정은 선거 직후 새로 선출된 유럽의회와 개편된 EU 집행위가 수행합니다.
문제는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반(反)ESG를 표방하는 극우·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CSDDD가 원점에서 재검토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이 시점에서 CSDDD는 죽은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세계자연기금(WWF)을 포함한 주요 환경단체도 CSDDD 폐기 가능성에 우려를 내비쳤습니다.
반면, CSDDD 법안 반대 입장을 이끈 독일 자유민주당은 “좋은 소식”이란 논평을 내놓았습니다.
요하네스 보겔 자유민주당 부의장은 “CSDDD는 의도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그 목적은 손상됐다”며 “약간의 수정만으로는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CSDDD에 대한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대목입니다. 이와 관련해 벨기에는 일단 기권·반대를 표명한 회원국이 제기한 우려 사항을 두고 유럽의회와 다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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