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가 자국 내 기후적응 기반시설(인프라) 구축에 1,000억 싱가포르달러(약 96조 3,300억원)를 지원합니다. 해수면 방벽, 수자원 관리 시스템 등 기후적응 프로젝트에 투자함으로써 싱가포르에 미칠 기후변화 영향을 최소화하겠단 계획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공공자금만으로는 불충분하다며 민간 투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가 지난 20일(현지시각) 보도했습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에서 기후적응 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 중 하나입니다. 섬나라 국가로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국가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의 적극적인 정책 의지도 한몫했습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총리 연설 직후 싱가포르 기후적응 정책 급물살 🌊

리 총리는 지난 2019년 독립기념일 대국민 담화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국민 모두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라며 “섬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리 총리는 그러면서 싱가포르를 보호하기 위해 금세기말까지 1,000억 싱가포르달러 이상이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리 총리의 연설 직후 싱가포르 내 기후적응 정책은 급물살을 탔습니다. 총리 연설 이듬해인 2020년 4월 싱가포르 수자원공사(PUB)는 해수면 상승 등 기후적응에 대비하는 주무기관으로 선정됐습니다. 이후 관련 정책 개발 및 집행, 나아가 여러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PUB에 따르면, 싱가포르 해수면은 2100년까지 1m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에 폭풍과 지반침하 등 기타 원인까지 작용하면 해수면은 최대 5m 이상 상승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그레이스 푸 싱가포르 지속가능성·환경부 장관은 “(해수면 상승으로) 싱가포르 국토의 3분의 1이 침수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 해수면 상승 속도가 현 추세대로 이어질 경우 싱가포르 국토의 3분의 1은 바닷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싱가포르 총리실

싱가포르가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바로 자연기반솔루션(NBS)입니다. 해안가를 따라 맹그로브숲을 조성해 파도에 맞서 해안 지반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밖에도 습지 보호 및 해조류 이식 등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해수면 상승 자체에 대한 대책으로 제방을 쌓고 간척지 높이를 올리는 사업도 진행 중입니다. 이미 PUB는 간척지 최소 매립 기준 높이를 해수면 대비 기존 3m에서 4m로 높였습니다. 항만, 공항 등 국가 중요 기반시설의 경우 최소 5m 이상에 건설하도록 했습니다.

PUB 관계자는 싱가포르 유명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스(The Straitght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자국 내 해안보호 인프라 건설에 적용될 공통설계 및 요구사항을 개발 중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해수면 상승에 따른 피해 및 폭우로 인한 홍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SPR(Source Pathway Receptor) 기반 수재해 분석 및 조치 ▲배수로 너비 및 깊이 확장 ▲저류조 설치 등의 조치가 진행 중입니다.

 

▲ 싱가포르 정부는 2009년부터 도시 열섬현상 완화 및 에너지효율성 향상 등을 위해 건축물 벽과 옥상을 녹화하는 스카이즈너리 그리너리 사업을 진행 중이다 ©SingapoReimagine

“기후적응 사업 수익 창출하지 못한단 인식 만연”…투자 및 재원 규모 ↓ 💰

그러나 전문가들은 싱가포르 기후적응 사업이 더 확대되기 위해선 공공자금만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은행, 보험사 등 민간자본과 민관 파트너십을 통한 혼합금융 프로젝트가 필요하단 것이 전문가들의 제언입니다.

싱가포르 녹색금융센터(SGFC) 또한 민간자본의 필요성을 언급합니다. SGFC는 올해 2월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퍼졌으나 기후적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부족하다”며 “정부가 기후적응 사업의 필요성을 전파하고 민간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안내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싱가포르에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기후대응 사업은 크게 온실가스 감축(Mitigation)과 기후적응(Adaptation)으로 구분됩니다. 이중 기후적응은 감축 사업에 비해 투자 규모가 미비합니다.

실제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산하 재정상설위원회(SCF)에 따르면, 2020년 세계 기후금융 6,400억 달러(약 833조원) 중 적응 목적으로 분류된 재원은 490억 달러(약 64조원)에 불과합니다.

비영리기관 카본트러스트(Carbon Trust)의 동남아시아 책임자인 신잉 톡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기후적응 및 복원력 사업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한단 인식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해안보호 주무기관인 싱가포르 수자원공사는 해안보호를 위해 맹그로브숲 조성 등 여러 사업을 진행 중이다 ©PUB 홈페이지 캡처

기후적응 위해 민간금융 참여 촉진할 방법은? 🤔

CNBC는 기후적응 사업 내 민간금융기관의 참여를 촉진하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재난채권 ▲녹색채권 ▲혼합금융 등 크게 3가지 방법입니다.

 

1️⃣ 재난채권: 정부가 보조금 형태로 보험사 지원 📈

먼저 재난채권(Catastrophe Bonds)은 대규모 자연재해 발생 시 보험사가 피해 보상으로 입은 손실에 대비해 발행하는 채권입니다. 재난을 뜻하는 영단어(catastrophe)를 반영해 흔히 ‘캣본드(Cat Bond)’로 불립니다.

재난채권은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로 인한 손실과 위험을 효과적으로 분산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싱가포르 중앙은행인 통화청(MAS 중앙은행)은 보험연계증권(IS) 제도를 통해 재난채권을 보조금 형태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MAS 중앙은행에 따르면, 2022년 기준 23개 재난채권이 발행됐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제도를 2025년 말까지 연장한 상태입니다.

 

녹색채권(Green Bond) 또한 기후적응 사업 투자금을 마련할 해결책 중 하나입니다. 녹색채권은 재생에너지 설비 및 산림복원 등 말 그대로 친환경 사업의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한 채권을 뜻합니다. 허나, 녹색채권 중 상당수는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위해 사용됩니다.

이에 대해 싱가포르국립대 지속가능녹색금융연구소의 에미르한 일한 연구원은 “민간투자자에게 녹색채권이 위험 대비 수익 면에서 충분하지 않다”며 “규제완화나 세액공제 같은 보조금이 지급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3️⃣ 혼합금융: “공공기관 기부금 1달러 당 3.3달러 상업 투자 유치해” 😮

마지막은 혼합금융(Blended Financing)입니다. 이는 공적자금과 민간금융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수익성이 낮은 개발사업에 공적자금이 투입돼 민간금융 조달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세계자원연구소(WRI)는 혼합금융이 민간금융 조달 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습니다. WRI는 지난 5월 보고서를 통해 공공기관 및 개발금융기관의 보증과 공동 자금 조달 등이 민간금융 조달에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WRI는 라이트스미스그룹(Lightsmith Group)의 사례를 대표 소개했습니다. 이 그룹은 작년 2월 기후회복력과 복원력에 투자한 최초의 사모펀드를 내놓았습니다.

회사 측은 유럽투자은행(EIB)·독일재건은행(KfW)·북유럽개발기금(NDF)·룩셈부르크 정부 등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후속 투자자의 리스크를 낮추는 방식으로 기부금 1달러 당 약 3.3달러(약 4200원)의 상업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약 1억 8,600만 달러(약 2,419억원) 규모의 기후회복력 재원을 모을 수 있었다고 라이트스미스그룹은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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