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 미국 남동부를 강타해 100여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초강력 허리케인 이언. 미국 본토를 덮친 허리케인 가운데 역대 5번째로 강력했는데요.

지난 11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영국 위험분석 자문기업 베리스크는 허리케인 이언으로 인한 바람, 해일, 홍수로 보험사가 입을 손해가 최대 570억 달러(약 82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올해 폭우와 태풍으로 인한 침수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9월 초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침수됐습니다. 포스코는 “하천 범람이 원인”이라며 공장 침수 및 가동 중단으로 한 매출 손실만 2조 4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문제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폭우 및 태풍의 강도와 빈도가 증가해 홍수로 인한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이란 점입니다.

이에 온실가스 배출 감축(Mitigation)뿐만 아니라, 이미 진행된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비하는 적응(Adaptation) 계획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요. 만약 폭우와 태풍이 들이닥치기 전, 불어난 물이 어디로 흘러갈지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떨까요?

 

▲ 플롬쿠벤을 시연한 결과.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이 홍수가 일어나기 쉬운 ‘리스크존(Risk Zone)’이 표시돼 있다. ©7Analytics

AI 활용해 홍수 예측 플랫폼 개발한 기후테크 스타트업 ‘세븐애널리틱스‘ 🌊

빗물이 향하는 길을 미리 예측하기 위해, 데이터 과학자와 지질학자, 그리고 엔지니어가 뭉쳐 설립한 기업이 있습니다.

2020년 설립된 노르웨이의 기후테크 스타트업 세븐애널리틱스(7Analytics)의 이야기입니다.

세븐애널리틱스는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ML) 기술로 여러 환경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미래 홍수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플랫폼 ‘플롬쿠벤(Flomkuben·FloodCube)’을 개발했습니다. 플롬쿠벤은 빗물 유출수와 지표수를 계산해, 강우량이 증가할 경우 물이 어디로 흘러갈지 지도로 모델링해 보여줍니다.

세븐애널리틱스는 정확한 모델링을 위해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합니다. 지형, 위성이미지, 기후데이터 같은 데이터를 플랫폼에 한데 모아 통합해 분석하는 것인데요. AI와 ML이 빗물 집수 지역과 유출수 패턴을 모델링하고, 빗물의 양을 계산합니다.

결과는 지도상에 그래픽으로 표시되는데요. ‘주택 단위 수준’의 결과까지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 기상정보, 교통량 등 여러 정보가 플롬쿠벤에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된다. 모든 과정은 자동화로 빠르게 처리된다. ©7Analytics

복잡한 데이터 처리해야 하는 모델링, 플롬쿠벤은 2분 만에 가능해! ⏰

물론 별도의 플랫폼 없이 기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통해 홍수 시나리오의 모델링이 가능합니다. 이에 대해 세븐애널리틱스는 자사 플랫폼의 강점은 속도에 있다고 피력합니다.

홍수 시나리오 모델링을 위해선 지질학·수문학 데이터, 과거와 현재 기상 데이터 등 여러 정보가 수집돼야 합니다. 가령 어떤 지역에 한 건물이 새로 건설돼도 수로가 변경되는데요. 세븐애널리틱스 공동설립자이자 지질학자인 베르너 스벨링겐은 최신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돼야 한단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세븐애널리틱스는 스마트 알고리즘을 활용해 새로운 정보를 주기적으로 캡처합니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와 지속적으로 연락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는데요.

AI와 ML을 활용한 이유도 여러 분야의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빠르게 종합해 모델링하기 위해서입니다.

세븐애널리틱스 공동설립자이자 지질학자인 조나스 톨런드 최고상업책임자(CCO)는 플롬쿠벤을 시연한 결과, 2분 만에 모델링을 얻었다고 답했는데요. 오차한계 값은 8%였다고 톨런드 CCO는 밝혔습니다.

 

▲ 세븐애널리틱스의 팀원들. 톨런드 CCO는 석유 지질학 석사와 유체모델링 경험 등 팀원들의 다양한 배경지식이 플랫폼 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한다. ©7Analytics

홍수 예측 플랫폼 개발하는데 석유 산업 분야가 도움된 까닭은? 🛢️

세븐애널리틱스는 다부문 간 데이터 융합을 위해 지질학자, 지구물리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인력자원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석유산업에서의 경험 및 지식이 빠른 플랫폼 개발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석유산업은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데요. 그런 석유산업이 어떻게 기후적응 솔루션을 찾는 데 도움이 됐단 걸까요?

일부 팀원들이 석유업계에서 유체 모델링 작업 또는 석유 탐색 작업에서 경력을 쌓았다고 톨런드 CCO는 설명했는데요. 그는 이어 “이 작업들은 확률과 결정 사이의 연결, 표에 가능한 많은 데이터를 포함시키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며 팀원들의 배경지식이 플롬쿠벤 개발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 노르웨이 베르겐시 ©iStock

홍수 지도는 기후적응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

가장 먼저 세븐애널리틱스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노르웨이 베르겐 시당국이었습니다.

베르겐 시당국은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 진행에서 플롬쿠벤을 사용 중입니다. 베르겐시가 1900년 이후로 강수량이 20% 증가했고,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을 위해 효율적이고 정확한 도구인 플롬쿠벤이 필요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이외에도 다국적 건설기업 스칸스카(Skanska), 엔지니어링 컨설팅 기업인 멀티컨설트(Multiconsult), 미국 기상서비스 제공업체 스톰지오(StormGeo) 등 15개 기업이 파일럿 프로그램·파트너십 등의 형태로 플롬쿠벤을 이용 중입니다.

건설업계, 보험업계, 기상업체 등 다양한 산업에서 플롬쿠벤을 자사의 비즈니스에 활용하고 있는 상황.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면.

 

▲ 2021년 노르웨이 비그레이스덱(Bygg Reis Deg) 박람회에서 건축산업혁신상을 받은 세븐애널리틱스 공동설립자 겸 CCO인 조나스 톨런드(왼)와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헬게 요르겐센(오)의 모습. ©7Analytics

1️⃣ 건물 짓기 전, 미리미리 기후적응 인프라 시뮬레이션 활용해 🏗️

건설업계는 홍수 예방 차원에서 플롬쿠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건물을 짓기 전 잠재적인 홍수 위험도를 확인하고, 청록인프라(BGI·Blue-Green Infrastructure) 배치 시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몇 분 만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BGI는 강·습지·수처리시설 등 블루인프라와 나무·공원·숲 등 그린인프라를 아우르는 말로, 기후변화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사회기반시설을 뜻합니다.

세븐애널리틱스는 빗물 계획의 정확성을 높일 경우 미래에 닥칠 손실의 90%를 피할 수 있단 노르웨이 건물품질관리국 자료를 설명했는데요. 즉, 손실이 발생하지 않음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톨런드 CCO는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어 “빗물 관리에 1 크로네를 투자할 때마다 25 크로네를 절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잠재력을 인정받은 세븐애널리틱스는 지난해 노르웨이 건설기업들이 모인 ‘비그레이스덱(Bygg Reis Deg·Build Travel You) 박람회’에서 건축산업혁신상을 수상했습니다.

 

▲ 맞춤형 기상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톰지오는 ‘플롬쿠벤’을 통해 고객들에게 홍수 위험 정보를 제공한다. ©StormGeo

2️⃣ 비즈니스 활동에 맞춤형 기상서비스 제공하는 스톰지오 🌀

세븐애널리틱스는 미국 기상서비스 기업인 스톰지오(StormGeo)와도 협력하고 있습니다. 스톰지오는 선박항로, 에너지 생산현장 등 특정 산업에 맞춤화된 기상서비스를 제공하는데요.

2021년 스톰지오는 세븐애널리틱스와 파트너십을 체결했습니다.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도시인 미국 텍사스주의 휴스턴과 브라질의 상파울루 지역에서 플롬쿠벤 플랫폼이 사용되는데요.

세븐애널리틱스는 스톰지오를 통해 실시간 기상예보 정보를 수집해 분석합니다. 이후 플롬쿠벤에 데이터를 입력하면, 그 결괏값을 토대로 미래 홍수 위험 정보를 생성해 스톰지오에 제공하는 것인데요. 세븐애널리틱스는 더 많은 기상정보 덕에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고, 스톰지오는 고객에게 추가적인 기상위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스톰지오) 직원이 (고객사에) 주차장 사용 가능 여부나 배달 트럭의 경로 변경 필요성을 알리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톨런드 CCO는 설명했습니다.

 

▲ 노르웨이 보험회사 프렘틴트는 지난 1월, 세븐애널리틱스와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Fremtind Forsikring

3️⃣ 노르웨이 3대 보험회사가 세븐애널리틱스를 찾은 이유는? 💸

지난 1월, 세븐애널리틱스는 노르웨이에서 세 번째로 큰 보험회사인 프렘틴트(Fremtind Forsikring)과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프로젝트명은 ‘인저플로드(InzureFlood)’. 1,000만 크로네(약 13억원)가 예산으로 투입됐는데요.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유, 기후변화로 홍수 피해가 빈번해지면서 보험사가 부담하는 지급액도 막대해졌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 금융산업협회인 파이넌스노르지(Finans Norge)에 따르면, 2019년 건물 밖에서 들이닥친 물로 인한 침수 피해에 대한 지급액만 7억 7,000만 크로네(약 1,032억원)에 달했는데요.

세븐애널리틱스와 프렌틴트는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험을 줄이고, 재산 피해도 줄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보험회사는 고객에게 문자메시지(SMS)로 홍수 경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세븐애널리틱스의 플랫폼이 개별 주택 수준까지 홍수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데요.

 

▲ 플롬쿠벤 시연 모습. 강수량이 증가할 경우 지표수 흐름(파란색)이 지도 위에 표시돼 있다. ©7Analytics, greenium 번역

또한, 보험회사는 더 정밀한 리스크 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재해보험은 안정적 운용을 위해 가입자별 재해위험을 평가해 그에 비례하는 보험료율을 부과합니다. 즉, 프로젝트의 홍수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면 리스크를 사전에 발견해 가입자에게 방재 노력을 권고할 수 있단 것인데요.

보험사는 리스크 관리를 통해 손실을 줄일 수 있고, 가입자는 사전 조치에 따른 보험료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르케 스케홀트 프렘틴트 수석 엔지니어는 “보험 가입자와 보험사 모두,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저렴하다”고 강조했는데요. 그는 이어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재건보다는 손상을 피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덧붙였습니다.

 

©iStock

세븐애널리틱스, EU 택소노미로 건설·부동산 분야 진출에 가속도 붙을 전망 🏘️

기후변화 적응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세븐애널리틱스는 빠르게 성장 중입니다.

세븐애널리틱스는 250만 달러(약 25억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고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밝혔습니다.

노르웨이 벤처캐피털(VC) 모멘텀(Momentum)이 투자를 주도했는데요. 건설 부문 벤처투자기업 컨스트럭트벤처(Construct Venture), 노르웨이 최대 주택개발기업 OBOS의 투자기업인 OBOS옵스타트(OBOS Oppstart) 등이 시드 투자에 참여했습니다.

건설업계의 러브콜이 잇따르는 상황. 세븐애널리틱스는 “유럽연합(EU)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따라 건설 및 부동산 업계가 친환경 금융(녹색채권)을 유치하기 위해선 기후 위험을 관리하고 있음을 입증해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에는 ▲향후 10-30년간 물리적 기후위험에 대한 검사(Screening) ▲기후위험 중요성 평가를 위한 취약성 평가 ▲식별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적응 솔루션 평가 등이 해당됩니다.

세븐애널리틱스는 자사 플랫폼인 플롬쿠벤이 건설 및 부동산 부문에서의 홍수 위험 포착을 도와,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