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의류(섬유)산업에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도입할 것을 발표한 가운데 의류폐기물 재활용 문제가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해당 제도는 옷, 신발 등 의류 제품 생산자에게 폐기물 처리 비용을 부과하는 등 의류업체에 재활용 의무를 가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류에 붙어있는 단추와 지퍼 등 부자재는 천으로 구성된 옷과는 소재가 달라 재활용률을 낮추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의류폐기물을 완벽하게 재활용하기 위해선 금속, 플라스틱 등 부자재를 제거하는 과정이 별도로 필요한 것.

이에 재활용 절차를 편리하게 만들고자 의류폐기물을 자동으로 분류하고 부자재를 떼어내는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AI)에 기반해 의류 소재와 색상을 파악하고, 의류만을 분류하는 ‘파이버소트(Fibersort)’ 기술입니다. 해당 기술은 네덜란드의 저명한 과학잡지인 ‘KIJK’에서 ‘2020년 최고의 기술 아이디어(Best Dutch Tech ideas of 2020)’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의류폐기물 해결 위한 프로젝트…“EU 지원 아래 파이버소트 기술개발” 🇪🇺

파이버소트 기술은 북서유럽 내 의류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해 결성된 ‘파이버소트 프로젝트’에서 시작됐습니다.

EU 집행위에 따르면, 매년 EU에서는 약 1,260만 톤의 의류폐기물이 발생합니다. 그중 패션의 나라 프랑스가 속해있는 북서유럽에서만 연간 약 470만 톤의 의류폐기물이 나옵니다.

더 큰 문제는 그중 약 30%만 재활용될 뿐, 의류폐기물 상당수는 매립·소각된단 것입니다.

이에 네덜란드 순환경제 싱크탱크 ‘서클이코노미(Circle Economy)’를 주축으로 ▲네덜란드 섬유 처리 회사 ‘스마트 파이버소팅(Smart Fibersorting)’ ▲벨기에 폐기물 자동분류기계 제조 회사 ‘발반 베일링 시스템(이하 발반·Valvan Baling Systems)’ 등 총 6개 기관이 모여 의류산업 내 재활용률을 높이고자 나선 것.

이들 6개 기관은 프로젝트 부제를 ‘섬유산업 내 폐쇄 루프(Closing the loop in the textiles industry)’로 지으며 의류분야에서 순환경제를 달성하겠단 의지를 다졌습니다.

여기서 폐쇄 루프란 재활용 과정에서 제품 및 재료의 본래 특성이 사라지지 않고 무한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 지난 2018년 3월 파이버소트 프로젝트가 인터레그 NWE의 지원 아래 데모데이를 개최한 모습 ©Circle Economy 트위터

이러한 파이버소트 프로젝트는 2016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진행됐습니다.

위 기간 프로젝트는 EU 집행위 산하 북서유럽 영토 협력 프로그램인 ‘인터레그 NWE(Interreg North-West Europe)’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기술을 개발해 왔습니다.

인터레그 NWE는 독일,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 북서유럽의 총 7개국에서 이뤄지는 다국적 협력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기후·환경 ▲에너지전환 ▲순환경제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에 우선적으로 보조금을 지원합니다.

파이버소트 프로젝트는 지원기간 중 총 190만 유로(약 27억원)를 지원받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 8월 의류폐기물 자동 분류 기술인 파이버소트를 시장에 출시한 바 있습니다.

이후 2020년 3월 인터레그 NWE의 지원이 종료됨과 동시에 프로젝트도 마무리됐지만, 프로젝트에 참여한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기술은 여전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스마트 파이버소팅의 모회사인 ‘빌란트 텍스트타일스(이하 빌란트·Wieland Textiles)’과 ‘발반’ 등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파이버소트 기술을 개선해 왔습니다.

프로젝트 진행 당시 스마트 파이버소팅은 데모 플랜트(Demo Plant)* 설계를, 발반은 파이버소트 기술을 기계로 구현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데모 플랜트: 대량 생산 이전에 소규모 설비를 건설·시험·운영하는 단계로, 다양한 변수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절차다.

 

시간당 900㎏ 의류폐기물 분류하는 파이버소트, 분류 과정은? 🤔

지난 2020년 3월 컨소시엄은 개선된 파이버소트 기술을 시장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술세미나에서 모리스 반데푸트 발반 엔지니어는 “이제 파이버소트 기술은 의류폐기물을 각각 15가지 소재와 색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파이버소트는 2018년 시장 출시 당시 약 6개 소재와 5개 색상만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빌란트는 “개선된 파이버소트 기술을 활용해 의류폐기물을 분류하면 약 17만 톤의 폐기물이 새로운 옷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기술은 시간당 900㎏의 의류폐기물을 소재와 색상에 기반해 분류해 낸다고 빌란트 측은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파이버소트 기술은 의류폐기물을 어떻게 분류하고 있을까요?

 

▲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해 의류폐기물을 이동하고 분류하는 파이버소트 기술 ©Salvation Army Trading Company 트위터

1️⃣ 컨베이어 벨트에 의류폐기물 놓기|“카메라 장착 로봇, 일정 간격으로 의류폐기물 배치” 🤖

파이버소트 기술은 컨베이어 벨트(이하 벨트)를 이용해 의류폐기물을 이동시켜 분류합니다.

반데푸트 엔지니어는 “벨트 시작점에 의류폐기물 위치를 감지하는 카메라가 장착된 로봇이 있다”며 “바로 이 로봇이 상자에서 의류폐기물을 하나씩 꺼내 벨트에 떨어뜨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때 로봇은 의류폐기물이 벨트를 이동하며 섞이지 않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옷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 의류폐기물이 근적외선NIR 카메라와 RGB 3색 카메라를 통과한 후 각 분류에 맞는 상자로 떨어지고 있다 ©Salvation Army Trading Company 인스타그램 Valvan Baling Systems

2️⃣ 의류폐기물 스캔하기|“NIR·RGB 카메라, 소재·색상 파악해 폐기물 분류” 👕

벨트에 떨어진 옷들은 1초 당 하나의 속도로 근적외선(NIR) 카메라와 RGB 3색 카메라를 통과합니다.

NIR 카메라는 의류 소재를, RGB 카메라는 색상을 파악에 사용됩니다.

먼저 소재의 경우 AI로 훈련된 근적외선 분광법(NIRS)을 기반으로 울,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비스코스, 나일론 등 섬유 구성을 분석합니다. 총 15가지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NIRS는 가시광선과 중적외선 사이에 존재하는 800~2,500㎚(나노미터) 범위의 근적외선에 있는 빛을 이용해 유기화합물의 정량을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스마트 파이버소팅은 “모든 섬유는 유기물이고 NIRS는 이러한 유기 성분에 민감하므로 이 기술은 모든 섬유 유형을 인식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NIRS는 AI 알고리즘을 통해 섬유 구성에 대해 학습해 여러 섬유가 섞여 있어도 주요 소재를 파악할 수 있다”며 “NIRS와 AI 알고리즘은 의류에 혼합된 섬유 유형의 비율을 분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근적외선 카메라와 RGB 3색 카메라를 통과한 의류폐기물은 소재와 색상을 기준으로 상자에 분류된다 ©Salvation Army Trading Company 유튜브 캡처

더불어 파이버소트 기술은 RGB 3색 카메라를 사용해 의류폐기물을 스캔하고 색상별로 의류를 분류합니다.

현재까지 파이버소트는 ▲빨간색 계열 ▲파란색 계열 ▲검은색 ▲회색 ▲살구색 등 총 15개 이상의 색상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때 스마트 파이버소팅은 “의류폐기물을 카메라로 스캔하며 생성된 모든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AI 알고리즘을 개선하고 스캔 정확도를 높여 파이버소트를 발전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 발반 베일링 시스템의 의류 부자재 제거 기계 트림클린이 지퍼 단추 라벨 등이 붙어있는 천을 잘라낸 모습 ©Valvan Baling Systems 유튜브 캡처

3️⃣ 부자재 제거하기|“단추·지퍼·라벨 제거 기계로 부자재 떼어내” ✂️

마지막 절차는 의류에 붙어있는 단추, 지퍼 등 부자재를 제거하는 과정입니다.

금속탐지기가 벨트에 놓인 의류폐기물에서 금속으로 구성된 부자재의 유무를 파악합니다.

부자재가 붙어있는 옷들은 단추, 지퍼, 라벨 등을 제거하는 기계인 발반의 ‘트림클린(Trimclean)’을 통해 단번에 제거됩니다. 현재 컨소시엄은 이러한 부자재를 더 빠르고 편리하게 떼어내기 위해 연구개발(R&D)을 진행 중입니다.

이렇게 분류된 의류폐기물은 당시 프로젝트 참여사인 벨기에의 지속가능한 섬유 공급업체인 ‘프로코텍스(Procotex)’ 등을 통해 재활용됩니다.

프로코텍스는 모든 종류의 의류폐기물을 섬유로 다시 순환시켜 가구, 매트리스 등 다양한 산업에서 소재로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 지난 2021년 영국 구세군은 파이버소트 기계를 제조한 발반 베일링 시스템으로부터 기계를 구입해 설치했다 ©Valvan Baling Systems

파이버소트 기계 12대 판매…“의류폐기물 분류산업 확장돼야”📈

현재 컨소시엄은 전 세계적으로 파이버소트 기술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리니엄이 확인한 결과, 올해 1월 기준 총 12대의 파이버소트 기계가 판매된 상황입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1년 영국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이 파이버소트 기계를 구매해 기술 시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당시 시연 현장에 따르면 파이버소트 기계의 양쪽 끝에는 의류폐기물 상자와 분류된 옷을 담는 상자가 각각 놓여있고 그사이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폐기물이 이동하는 벨트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때 면으로 구성된 시트(Sheet)를 투입한 결과, 벨트를 따라 스캔 카메라를 통과한 폐기물이 ‘면 100%’라고 표시된 상자 도달에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기술에 대해 칼 매그너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 수석 파트너는 “관련 업계에서는 화학재활용과 같은 기술에 투자하는 데 집중하지만 재활용을 용이하게 하는 분류 과정도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아직 분류산업이 작은 규모이지만 의류업계의 재활용률을 높이고자 해당 산업의 규모를 확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RGB 3색 카메라를 사용하는 파이버소트 기술은 어두운 색상보다는 밝은색을 더 잘 인식해 분류하고 있다 ©Fibersort

파이버소트, 특정 소재·색상 파악 시 정확도 떨어지기도 📉

한편, 발반은 파이버소트 기술이 의류폐기물의 재활용률을 높일 것이라면서도 모든 기술과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먼저 파이버소트는 젖은 옷을 분류할 때의 정확도는 다소 떨어집니다. 이에 젖은 옷은 별도의 범주로 분류해 건조 과정을 거친 후 소재와 색상을 파악하는 단계에 진입합니다.

또 파이버소트는 단일섬유로 구성된 의류의 경우 분류 정확도가 99%, 두 가지 섬유로 구성된 경우 95%에 달하는 높은 정확성을 보입니다. 반면, 이보다 섬유 구성방식이 복잡한 경우 정확도가 다소 떨어집니다.

색상 분류 과정에서도 한계가 드러납니다. RGB 3색 카메라는 빛의 흡수를 기반으로 색상을 구별하므로 어두운 색상보다 밝은색을 더 잘 인식합니다.

이에 검정색 의류의 경우 색상을 파악하는 정확도가 떨어져 폐기물 분류 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 파이버소팅은 “파이버소트는 의류폐기물이 반복적으로 순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핵심기술”이라며 “해당 기술이 더욱 확산하면 의류산업의 순환경제에 있어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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