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후 투자라 불리는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Inflation Reduction Act)이 지난 8월 7일(현지시각) 미국 의회 상원을 통과했습니다.

IRA 법안은 미 상원 총 100석 중 찬성 50대 반대 50으로, 민주 성향 무소속을 포함한 민주당과 공화당 상원의원 전원이 각각 찬성과 반대로 갈렸는데요. 미 상원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찬성 51대 반대 50으로 IRA 법안은 가결됐습니다.

이 법안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국가 사회안전망에 2조 달러(약 2,600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던 더나은재건 법안(BBB‧Build Back Better Plan)을 수정한 것입니다. BBB 법안에는 ▲건강보험 확대, ▲약값 인하, ▲교육 개혁, ▲사회취약계층 지원, ▲기후대응 등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발표했던 공약 전반이 담겨있었는데요. 그간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BBB 법안 통과가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이에 민주당이 BBB 법안의 규모와 범위를 줄이고 이름 또한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으로 변경해 다시 의회에 제안한 것입니다.

이번 IRA 법안은 2011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예산통제법(BCA‧Budget Control Act)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이뤄진 재정적자 감축법안이란 의의를 갖는데요. 특히,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친환경에너지 및 기후대응 투자’란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IRA 법안에 전반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정리했습니다.

*캐스팅보트(casting vote): 의회 의결에서 동수가 나올때 의장이 가지는 결정권

 

©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재생에너지 및 기후대응 투자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greenium

기후·세금·보건 3가지로 보는 IRA 법안 주요내용 📝

바이든 대통령은 법안 통과 뒤 성명을 통해 “오늘 상원 민주당은 특별한 이익을 놓고 미국 가정의 편에 섰다”며 환영했습니다. 12일(현지시각) 하원 표결을 앞두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 법안을 신속하게 대통령에게 보내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IRA 법안은 하원 통과 후 대통령 서명을 거쳐서 공표될 예정입니다.

IRA 법안의 핵심은 3가지입니다.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 전기차 세금공제 등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 ▲재원 마련을 위한 최저 법인세 도입과 자사주 매입세 부과 등 세제 개편, ▲처방약 가격 인하와 전국민건강보험(오바마케어‧ACA) 보조금 연장 등 보건의료 강화입니다.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 의료보호 강화 등에 총 4,330억 달러(약 562조원) 규모가 투입됩니다. 세제 개편, 의료비 절감 등으로 총 7,390억 달러(약 961조원)의 세수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민주당은 이를 통해 향후 10년간 3,000억 달러(약 390조원) 가량의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1️⃣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 🔆

재생에너지 생산 및 소비, 전기화(전기차‧열펌프 등), 주택 및 건물의 녹색기술 개조를 지원한단 것이 주 내용입니다. 소비자는 태양광 패널 설치, 전기차 구매 등 친환경 소비에 대해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태양광‧풍력발전‧배터리 등 미국 내 재생에너지 산업 가속화를 도울 보조금도 지원됩니다.

환경기후정의 보조금과 기후친화농업 지원, 숲 가꾸기, 바이오연료, 해안서식지 보존 등 저소득계층과 농촌을 위한 지원도 포함됐는데요.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에만 총 3,860억 달러(약 502조원)의 세액공제·보조금이 지원됩니다.

 

2️⃣ 세제 개편 💰

IRA 법안 재원 마련을 위해 미 정부는 세제 개편을 단행합니다. 순이익 10억 달러 이상인 기업 200여 곳을 대상으로 ▲15%의 최저 법인세율 부과를 도입하고, ▲국세청(IRS)의 세금 징수를 강화하며,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에 1%의 세금이 부과됩니다.

더불어 메탄(CH4) 1톤당 단계적으로 900~1,500달러의 세금을 부과하는 ‘메탄배출세’도 도입될 예정입니다. IRA 법안은 이를 통해 약 4,680억 달러(약 633조원)의 세금 수입을 거둘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3️⃣ 보건의료 강화 🚑

IRA 법안에는 의료보험 확대 내용도 담겼습니다. 우선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전국민건강보험법(ACA)에 대한 보험료 세액공제가 연장됩니다. ACA 보조금은 올해를 끝으로 종료될 예정이었는데요. IRA 법안 통과 덕에 ACA 가입자 1,300만여 명은 3년 더 보험료를 지원받게 됐습니다.

또한, 메디케어(노인의료보험‧Medicare)와 관련해 제약사와의 처방약 가격 협상이 허용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 보건복지부(HHS)가 2026년부터 메디케어에 대하 더 낮은 약값을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인데요. 이 밖에도 메디케어 보험료 인상 제한, 무료백신 제공, 저소득층 처방약에 대한 보조금이 지급됩니다.

 

©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국회에 나가 IRA 법안이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의료비용을 절감하며 기후변화 대응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Twitter 갈무리

IRA 법안에 ‘인플레이션 감축’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

미 민주당은 IRA 법안을 발의하며 이 법안이 미국 내 심각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해소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지난 6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9.1% 상승하며 41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와 식료품 비용 급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 등이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는데요.

10일(현지시각) 미국 노동통계국(BLS)은 7월 미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8.5% 올랐다고 발표했는데요. 미국 내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은 것이 아니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인플레이션이 꺾였다고 속단하기 이르단 반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IRA 법안이 어떻게 인플레이션을 감축할 수 있냐고 반문합니다. 이 법안이 유류세 인하, 부가가치세 인하, 취약계층 지원 증대 같은 직접적인 가격인하정책보다 기후대응‧보건 강화‧세금 개편을 핵심으로 하기 때문인데요.

IRA 법안이 오는 11월 8일 시행될 미 중간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명분일 뿐, 사실상 그간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해온 BBB 법안의 재탕이 아니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 greenium 편집

이에 대해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IRA 법안 상원 통과가 “인플레이션 감축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 평했는데요. 그는 IRA 법안이 인플레이션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머스 전 장관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첫째, IRA 법안이 재정 적자를 줄이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해선 공급 증가 및 수요 감소로 물가를 하락시켜야 하는데요. 서머스 전 장관은 정부의 재정 감축은 경제 전반의 통화량을 줄여 물가 인상을 억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민간 싱크탱크 책임연방예산위원회(CRFB)는 IRA 법안이 시행될 경우 향후 20년에 걸쳐 재정적자 규모가 1조 9,000억 달러(약 2,473조원)가량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둘째, IRA 법안이 직접적인 가격 인하 효과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우선 처방전 가격 인하 및 건강보험 보조금 등을 통해 의료비가 낮아집니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전환을 통해 국내 에너지 자급을 늘림으로써 에너지 공급이 안정적으로 바뀌는데요. 서머스 전 장관은 에너지 공급 불안정을 해소함으로써 에너지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 사상 최대의 기후 투자, 물가 인상을 더 촉진하진 않을까? 🤔
IRA 법안이 오히려 시장 통화량을 늘려 물가 인상을 촉진할 것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기후대응과 보건의료 강화에 막대한 재정이 투자되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IRA 법안은 투자와 동시에 최저 법인세·자사주 매입세·메탄배출세 도입, 국세청 세금 징수 강화 등의 세수 확대로 7,900억 달러가량의 재정 수입도 목표로 합니다.

즉, 지출을 늘리는 것은 맞지만 그보다 수입이 1.6배 더 늘어난단 것.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피치 또한 IRA 법안이 중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효과를 낼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 UN Climate Change 인스타그램 갈무리

IRA 법안, 경제성장과 기후대응 함께 잡을까? ⚖️

IRA 법안이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상당수 전문가는 IRA 법안이 인플레이션을 해소할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이점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데요.

우선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경제학자 126명은 IRA 법안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들은 서한을 통해 IRA 법안이 미국 가정의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고 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이와 관련해 에너지 시장조사전문기관 에너지이노베이션(Energy Innovation)은 IRA 법안의 투자로 150만여 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반면, IRA 법안이 되려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IRA 법안을 검토한 결과, 향후 2년간 물가상승률을 0.1% 미만으로 변화시킬 것이며 오는 2023년에는 오히려 약간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의하면, CBO는 ‘인플레이션 감축’이란 이름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이 올해 인플레이션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 8월 7일현지시각 민주당이 발의한 IRA법안 미 상원에서 찬성 50대 반대 50으로 동점이 나오자 상원의장인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그 결과 IRA 법안은 찬성 51대 반대 50으로 가결됐다 CNN 캡처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은 “(IRA 법안으로 인해) 초기 몇 년간 인플레이션이 약간 증가할 수 있고 2024년에는 최대 0.05% 증가시킬 것”이란 내용을 담은 분석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이처럼 IRA 법안이 이름 그대로 인플레이션을 잡을지에 대해서는 분석이 엇갈린 상황.

그럼에도 IRA 법안이 미국의 기후대응을 위한 사상 최대의 법안이란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데요. 민주당의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위원장이자 상원의원인 브라이언 샤츠는 IRA 법안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기후행동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제이스 퍼먼 전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또한 IRA 법안에 대해 “우리의 가장 큰 장기적 과제 중 하나(기후변화)를 해결하는 동시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면서도 가장 큰 단기적 과제(인플레이션)에 진전을 이루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