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하나에 4,000만 원. 지금 계약해도 1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볼보 자동차가 1대에 4,000~5,000만 원대인 걸 생각하면 엄청난 가격입니다. 이처럼 명품 가방은 자동차 한 대 값을 호가함에도 불구, 재고가 없어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죠.

6년 전 1,500만 원대였던 에르메스 버킨백은 현재 3,000만 원이 넘고, 700만 원대였던 샤넬의 클래식 핸드백은 지난해 1,000만원을 돌파했죠. 사연이 담긴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같은 가방인데, 왜? 가격이 변하는 걸까요?

바로 명품 업계 전반에 통용되는 ‘가격 정책’ 때문인데요.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기 위해 실시 중인 명품 업계의 재고 관리법입니다.

 

너희를 모조리 불태우기로 결심했어 🔥

일반 브랜드는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할인 행사 같은 판촉으로 가격을 조정합니다. 하지만 명품 업계는 모두 소각하는 ‘관행’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행에 대한 명품 업계의 주장은 재고를 소각함으로써 브랜드 지적 재산에 대한 위조 및 손상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생태적 긴급 상황’을 고려했을 때, 공해를 일으키며 생산한 제품을 다시 불길 속에 던진다는 것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행동인데요. 여러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어째서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걸까요? 또, 금액 인상과는 어떤 상관 관계를 갖고 있는 걸까요?

 

https://images.unsplash.com/photo-1592839930500-3445eb72b8ad?ixlib=rb-1.2.1&q=85&fm=jpg&crop=entropy&cs=srgb
© Laura Chouette, UNSPLASH

더 비싸야 잘 팔린다고? 명품의 마케팅 전략! 💸

가격 인상은 명품 업계의 오래된 마케팅 기법 중 하나입니다. 제품이 언제 들어오는지, 어느 매장에 재고가 있는지 철저히 비밀에 부칠뿐더러 지금이 가장 저렴한 시기임을 암시하며 고객들의 소비를 독촉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 여느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명품 업계 또한 시즌이 끝날 때까지 미처 판매하지 못해 재고가 남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시의성이 존재하는 패션 업계 특성상 재고 문제는 사라질 수 없는 ‘노이즈’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유행으로 시즌 컬렉션에서 판매되지 않은 제품이 증가함에 따라 재고 축적 문제는 불가피해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품 업계가 판매가를 낮추지 않은 이유는 가격 인하에 따라 소비자들이 제품 가치를 낮게 인식할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명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희소성’인데요. 제품의 가용성이 낮을수록 동일 제품에 대한 수요와 시장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죠.

패션 브랜드는 지난 10년 동안 할인 및 아울렛 입점 등 가격 마케팅에 소극적으로 변화해왔습니다. 루이비통은 더이상 도매 상품을 판매하지 않으며, 프라다는 매장 내 가격 인하를 종료하겠다고 발표했죠.

이러한 가격 정책에 대해 프라다의 최고경영자(CEO)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는 “가격 일관성을 개선하면 고객과의 관계가 강화되고, 제품 가치가 향상될 거라 믿는다”고 밝혔는데요. 일각에서는 명품 브랜드 가치에 대해 의구심을 보이며 높은 가격이 곧 높은 품질을 야기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지속가능성 교수인 티모 리사넨은 명품의 가격은 실제 가치와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샤넬이나 구찌에서 물건을 사면 그 돈은 실제로 대규모 광고 캠페인에 지불하는 것과 같습니다”고 비판했죠. 즉, 품질과 가격은 정비례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명품 브랜드의 올곧은 가격 정책과 그로 인한 재고 소각이 윤리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지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 Babak UNSPLASH

명품이 불타고, 지구가 병든다 🌎

버버리는 2018년 3,800만 달러(한화 424억 원) 상당의 재고 폐기 문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는데요. 같은 해 명품 시계 브랜드인 까르디에, 피아제를 소유하고 있는 리치몬드 그룹은 약 5억 3,300만 달러 상당의 시계를 파괴했다고 인정하기도 했죠.

명품 브랜드들만 재고를 소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패스트패션의 대표인 H&M은 2013년 이후 재고 60톤을 소각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2017년 미국 뉴욕타임스는 나이키가 제품 폐기 전, 암흑의 경로로 유출될 경우를 대비해 옷과 신발을 미리 손상시켰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패션 업계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재고 소각. 이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환경 훼손입니다. 그중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탄소 배출’인데요. 석유로 만들어진 섬유인 폴리에스터는 소각할 때 기름을 태우는 것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죠. 뿐만 아니라 염색된 원단은 원사에 포함된 수많은 화학 물질과 마감재가 함께 소각되면서 이산화탄소(CO2)를 포함한 유해한 입자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게 됩니다.

이윤 창출을 위해 자원을 낭비하면서까지 제작된 의류가 판매되지 못해 더 큰 공해를 유발한다니 어불성설이죠. 소각 운명에 놓인 폐기물로 전락하기 전에 재활용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의류의 경우 상당수가 재활용이 힘든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폴리에스터와 면화 같은 섬유가 혼합된 의류는 재활용이 어렵고, 의류를 분쇄기에 넣기 전에 모든 단추와 지퍼를 제거하는 수작업이 수반돼야만 합니다. 의류 폐기물을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공수에만 엄청난 비용이 부과되니, 많은 브랜드가 비교적 저렴한 소각을 선택하는 것이죠.

 

재고 문제의 미래, 해결책을 묻는다면 🤔

이런 흐름에는 패션의 심장, 프랑스의 관련 법 제정안이 큰 영향을 끼쳤는데요. 패션 업계의 관행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2020년 프랑스 상원은 팔리지 않은 의류·신발·화장품 등 재고품의 폐기를 금지하는 법 ‘폐기 방지와 순환경제 법안(anti-waste and circular economy bill)’을 제정했습니다.

생산자부터 유통업자에 이르기까지, 건강 혹은 안전상의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재고품을 폐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간의 명품 브랜드의 행보에 소비자들은 단단히 뿔이 났는데요. 재고 폐기 방식에 대한 항의가 이어지고, 급기야 불매 운동으로 이어지며 명품 브랜드의 행동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버버리는 더는 재고를 파괴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고, 판매할 수 없는 품목은 재활용이나 기부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죠. 루이비통도 오는 2023년까지 모든 소비재에 대한 소각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조금씩 시작되는 변화의 물결🌊

법안 재정 이후 명품 뿐 아니라 패션 업계 전반에 변화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루이비통은 재고를 소각하는 대신 B2B 재고 원단 플랫폼인 노나 소스(Nona Source)를 설립해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명품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고품질 원단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단, 자사 브랜드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루이비통의 독점 패턴, 브랜드 패브릭 판매는 금지하고 있죠.

자라(Zara)의 모회사 인디텍스(Inditex)는 27억 달러(한화 3조 132억 원)를 투자해 모든 의류 품목에 무선 주파수 식별(RFID) 칩을 부착, 데이터를 확보함으로써 수요와 공급을 간소화했습니다. 이와 같은 플랫폼의 등장과 데이터 시스템의 등장은 기존의 명품 브랜드의 고질적인 재고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기에 효과적일 거라 예상됩니다.

앞으로 패션 브랜드는 전처럼 고고하게 재고를 소각하는 방식을 고집할 수 없습니다. 소비자와 투자자가 지속 가능성을 치밀하게 살피는 만큼, 생산되고 폐기될 때까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야만 하죠.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명품 브랜드가 재고 소각을 고수하는 것이 현실. 과연 패션 업계의 순환경제 모델은 언제쯤 활성화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