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이산화탄소(CO2) 저장고입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열대우림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고 하죠. 하지만 지구온난화 때문에 바다의 탄소흡수능력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바다 내부의 생태계도 엉망이 되어 가고 있죠. 이런 바다를 회복시킬 수 있는 독특한 비법이 있다는데요.

 

고래 똥과 시체, 바다를 살릴 해결책이 된다고? 💩

독특한 비법은 바로 고래의 ‘배설물’에 있습니다. 고래 대변에는 철분, 인, 질소 등의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이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위한 완벽한 성장 조건을 만드는데요. 식물성 플랑크톤들에게는 풍부한 영양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가 발간하는 F&D매거진(Finance & Development Magazine)에 따르면, 현재 바다에 존재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은 대략적으로 우리 대기에 존재하는 전체 산소의 최소 50%가 되는 양의 산소를 내뿜는다고 합니다. 또 전체 이산화탄소의 40%로 추정되는 약 37조 톤을 흡수한다고 하죠. 이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흡수하는 탄소보다 약 4배 이상 많다고 합니다.

바다의 탄소흡수능력이 낮아진 건 ‘해양산성화’ 때문입니다. 조개나 산호 등 탄산칼슘으로 껍질과 껍데기를 가진 해양생물은 해양산성화로 인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데요. 즉, 해양산성화로 인해 바다 생태계 자체가 큰 위협을 받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다가 이미 너무 탄소를 흡수해, 더 흡수할 수가 없는 것!

다만, 식물성 플랑크톤이 번성하기 시작하면 산성화된 바다는 회복될 수 있는데요. 고래가 배설물을 배출한 곳에 식물성 플랑크톤이 번성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이산화탄소 흡수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해양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바다의 생태계를 풍부하게 하죠.

 

© 2019년 대왕고래가 배설하는 장면이 포착됐다_Ian Wiese

고래는 몸 자체가 훌륭한 탄소흡수원입니다. 고래는 죽으면 해저로 가라앉습니다. 고래 사체에 저장된 모든 탄소가 수 세기 동안 해저에 가라앉는다는 말이죠. 미국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된 ‘포경이 해양 탄소 순환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에 의하면, 산업 포경이 시작되기 전에는 고래들이 죽음을 맞으면서 연간 약 190만 톤의 탄소를 바다 밑에 저장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자동차 4만 대가 연간 도로에서 내뿜는 탄소배출량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고래 사체는 배설물과 마찬가지로 해양생태계 번성의 기반이 되는데요. 고래 사체를 먹으며 자생하는 심해 생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고래 한 마리당 200만 달러의 역할! 💵

IMF 산하 능력개발연구소의 부국장인 랠프 채미 박사가 이끄는 팀은 F&D매거진에서 고래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금전적인 측면에서 분석했는데요. 이들은 고래가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고래 관광산업, 고래의 탄소포집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고래 한 마리당 200만 달러(약 23억 6,000만 원) 만큼의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현재 고래 개체수는 전 세계를 다 합쳐 약 130만 마리로 추산되는데요. 이를 생각해보면 전 세계 고래가 생산하고 있는 가치는 우리가 감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 Susann Schuster, Unsplash

랠프 채미 박사는 고래의 능력을 금전적으로 치환하는 분석을 통해 고래가 국제적 공익을 가져오는 생물이란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연구팀이 내놓은 분석에 의하면, 고래 한 마리는 수천 그루의 나무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죠.

그러나 탄소흡수원으로서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대표적인 탄소흡수원인 나무의 경우 ‘레드플러스(REDD+)’나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체결된 산림·토지 이용 선언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보호하려 노력하는데요. 반면, 고래 보호를 위한 국제 조약은 미흡합니다.

이에 연구팀은 고래를 지키기 위한 강력한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요. 덧붙여 고래 포경이 성행하기 전의 고래 개체수(약 400만~500만 마리)를 회복할 경우 매년 약 17억 톤의 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습니다. 이는 브라질의 연간 탄소배출량인 약 4억 톤 보다 많은 수치입니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조약, REDD+에 대해 궁금하다면

 

고래를 지킬 새로운 조약이 필요한 이유! 👊

고래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포경이 유행하면서 한 번 멸종위기를 겪은 바 있습니다. 1964년 국제포경규제협약(ICRW) 체결 이후 상업포경이 전면 금지된 덕에 고래 개체수가 천천히 회복 중이죠.

그런데 고래 개체수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다시 포경을 허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고래고기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 중 하나인 일본은 2019년 ICRW를 탈퇴했는데요. 이후 고래잡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같은 대표적인 포경국들도 “상업포경을 허용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는데요. 이대로 국제사회가 산업 포경을 방관한다면, 고래는 다시 멸종위기에 놓일지도 모릅니다. 랠프 채미 박사가 말한 고래 보호를 위한 국제적 조약 규정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죠.

 

© 어선 크레인으로 옮겨지는 밍크고래_울산해양경찰서 제공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국제포경협회(IWC) 가입국으로 1986년부터 상업포경을 금지해왔는데요.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혼획 때문인데요. 특정한 어종을 잡기 위해 풀어놓은 그물에 다른 어종이 잡히는 것을 ‘혼획’이라고 합니다. 혼획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잦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난 6일 속초에서는 혹등고래가 다른 어종을 잡기 위해 던진 그물에 잡혔습니다. 또 불과 일주일 뒤 남해에서도 그물에 잡힌 밍크고래 사체가 발견됐죠.

이처럼 혼획 때문에 잡히는 고래가 2019년에만 1,960마리 였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혼획으로 인한 고래의 죽음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시민단체는 고래고기 유통 전면 금지 주장 중! 🐬 지난 5월 우리 정부는 국내 해역에 서식하는 고래류를 보호하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고래자원 보존과 관리에 의한 고시’ 개정안을 시행해 고래 사체 거래를 축소했고요. 또 고래 2종을 해양보호 생물종으로 신규 지정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법 개정으로 인해 고래류가 앞으로 더욱 잘 보호될 거라고 장담했지만, 시민단체의 반응은 싸늘한 상태. 국내에서 유통되는 고래고기의 양을 계산해봤더니 혼획되는 것 이상으로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즉, 어민들이 불법으로 포경을 하고 있는 셈이죠. 시민단체는 고래고기가 조금이라도 유통되는 한 혼획을 가장해서 불법 포경을 하는 ‘뒷고기’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래고기 유통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

 

© Gabriel Dizzi, Unsplash

어쩌면 아직 우리가 푸른 바다에서 다양한 해양생물을 볼 수 있는 건 우리가 고래를 보호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고래가 멸종했다면 이미 황폐화된 바다를 보며 후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환경문제가 그렇듯, 고래 보호 역시 지금까지보다는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고래가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도록 하는 국제적 합의 및 국내 법 제정이 강력하게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