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린 지난 2년은 전시업계에 암흑기와도 같은 시기였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로부터 회자된 전시가 있었죠. 바로 지난해 여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란 전시입니다.

이 전시는 여러모로 인상 깊었습니다. 지구 생태계란 ‘큰 집’과 사람이 거주하는 ‘작은 집’의 관계를 통해 기후위기를 본다는 전시 의도에 맞춰 말라비틀어진 채 죽어버린 나무가 미술관 앞에 떡하니 놓여있었죠. 어두컴컴한 전시장 곳곳에는 인간의 활동으로 서식지를 잃고 아사한 동물을 박제한 표본이 놓여있었는데요. 우리가 사는 집이 생산·건설·폐기되는 과정에서 어떤 자재가 투입되고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인포그래픽화한 내용이 거대한 벽 한 면을 채웠습니다.

3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 기후미술관 전시. 전시회장에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멈추는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장의 사진으로 소개된 이브 모셔란 예술가도 그중 하나였죠. <만조선 High Water Line>이란 프로젝트를 기록한 사진에는 작가가 뉴욕, 마이애미, 런던 등 대도시를 돌아다니며 거리에 분필 가루로 선을 그린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선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지면의 경계선이었죠. 단지 거리에 하얀 선이 그어졌을 뿐인데, 익숙하게 보던 도시 일부가 사라질 수 있단 위기감이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 High Water Line 제공

얼마전 기후미술관 전시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2021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을 수상했단 소식을 접했습니다. 전시를 구현하는 방식에서 에너지와 자원 소모를 모두 최소화했단 점에서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는데요. 전시장 내 해설 자료와 그래픽 모두 일반적인 플라스틱 비닐 대신 이면지를 재사용했고, 인쇄물의 경우 잉크 절약을 위해 에코서체 및 망점 인쇄를 활용했다고 합니다.

초청 큐레이터로 해당 전시를 공동 기획한 배형민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환경 관련 다양한 기관과 주체, 서울시립미술관, 그래픽 디자이너, 전시 작가들과 협업해 창의적인 큐레이팅 방법론으로 지속가능한 전시를 구현할 수 있었다. 하나의 전시에서부터 어머어마한 기후위기까지 협업과 신뢰가 있어야만 문제의 실마리가 풀린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기후위기가 미술 전시 주제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상황. 이밖에 많은 전시와 강연이 온오프라인상에서 이뤄졌는데요. 앞으로 그리니엄은 ‘순환경제 나들이’ 코너를 통해 그간 못 다룬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구독자 여러분에게 전달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