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누가 더 많이 책임져야 할까요? 사실 기후변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국가나 기업은 대부분 부유합니다. 자원을 채굴하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은 공해를 방출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경제가 번성할수록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할 수밖에 없죠.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사회체제의 문제라는 사실이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기후변화의 진정한 해결책은 사회체제를 바꾸는 것에 있다고 말하지요. 이것이 바로 국제적으로 형성된 ‘기후정의운동’의 근간입니다.

 

우리는 기후정의를 원한다! 🗣️

옙 사노(Yeb Sano) 그린피스 동남아시아 사무총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적으로 부유한 극소수의 국가와 기업이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을 제공했으나, 정작 기후변화의 악영향은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팽배한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선 ‘기후정의(climate justice)’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죠.

기후정의는 2000년대 초반 등장해 현재까지도 기후 소송과 정책 입안에 무수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개념입니다. 2007년 제1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3)가 열리던 인도네시아 발리에선 기후정의네트워크(CJN, Climate Justice Now)란 국제적인 연대체가 결성됐는데요. 기후정의네트워크는 각국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민중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 모인 연대체입니다.

이들은 ‘부유한 선진국이 남반구 정부에게 배출량 감축을 약속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하는데요. 기후정의네트워크는 이어 ‘환경과 우리 삶을 지키기 위해 근본적으로 다른 대안과 실천이 필요하다’며 당장의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정의 행진 kris krüg <a href=httpswwwflickrcomphotoskk4181222759inphotostream target= blank rel=noreferrer noopener>Flickr<a>

기후정의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점은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 직후입니다. 당시 COP15에선 교통의정서의 후속 체제가 도출돼야 했죠. 선진국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한 교통의정서의 1차 공약 기간이 2012년에 만료를 앞뒀기 때문인데요. 문제는 각국의 이해관계 차이 및 기업의 로비로 인해 의미있는 합의에 실패했단 것입니다.

이는 기후변화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촉발되는 계기가 됐는데요. COP15 회의 기간 중 10만여명의 시민이 코펜하겐 시내에서 기후정의를 외치며 행진하면서, 각국 기후활동가와 시민단체에게 기후정의가 각인됐습니다. 기후정의운동은 이듬해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열린 ‘기후변화와 대지의 권리에 대한 세계민중회의’로 이어지는데요. 이 회의에선 실패한 COP15를 대신해 기후변화의 구조적 원인을 지적하고, 기후변화 적응 및 완화를 위해 사회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기후정의의 원칙과 이념을 담은 ‘코차밤바 선언문(People’s Agreement Cochabamba)’을 채택합니다. 이 선언문은 현재까지 기후정의의 기반이 되고 있죠.

 

© Friedrich Ebert Stiftung 홈페이지 갈무리

기후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

기후변화에 막중한 책임을 가진 선진국들의 부진한 움직임으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서 관련 국가나 기업을 상대로 기후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기후소송은 2017년 884건에서 2020년 1,550건으로 증가했습니다.

기후 소송 상당수는 중앙 정부나 지자체를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기후변화로부터 대중을 보호하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실패했단 혐의로 법정에 섭니다. 런던정경대(LSE) 그랜섬연구소의 세계기후변화법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인 캐서린 하이암은 “많은 단체들이 기후 행동을 시도하고 진전시키는 것과 동시에 정치적 논쟁의 경계를 넓히기 위한 도구로 법원을 이용한다”고 말했는데요. 이처럼, 기후 소송은 그자체만으로 또 다른 담론을 형성하고 나아가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유효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기후 소송을 이야기한다면.

 

© Youth4ClimateJustice <a href=httpsyouth4climatejusticeorg target= blank rel=noreferrer noopener>홈페이지 갈무리<a>

1️⃣ “기후변화 책임져!” 33개국 고소한 6명의 청소년 🌍

2020년 8월, 포르투갈의 청소년 활동가 6명은 유럽연합(EU) 내 28개 회원국과 영국, 스위스, 노르웨이, 러시아, 터키 등 33개국을 상대로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해당 소송의 배경이 된 것은 포르투갈에 닥친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로 인한 피해 때문입니다. 원고 2명은 2018년 폭염으로 기온이 44°C까지 치솟은 리스본에 거주하며, 나머지 4명은 1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레이히아주 출신이었죠.

이들은 기후변화가 초래한 최근 몇 년간의 대규모 산불과 극한 폭염이 생명권을 위협하고 있고, 야외활동을 할 수 없어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훼손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같은해 12월 유럽인권재판소는 “이 사건을 신속하게 심사하겠다”며, 유럽인권법 제3조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나 처벌’에 해당하는지 평가하겠다 밝혔습니다. 소송에 걸린 국가들은 신속 심사 결정 취소를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습니다.

 

© Plan B 제공

2️⃣ “영국 정부는 탄소 배출 감축 목표 이행하지 않고 있어!” 🇬🇧

지난 5월, 영국에서는 기후정의 실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펴졌습니다. 마리아 트릭스, 아데톨라 오나마데, 제리 아몬칸도 등 기후정의운동가 3인과 비영리단체 ‘플랜 비 어스(Plan B Earth)’가 영국 정부를 상대로 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건데요.

이들은 영국 정부가 발표한 탄소중립 방안은 고사하고, 국내 탄소배출량 감소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정부가 기후변화에 직면할 젊은 세대와 남반구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피력했습니다. 멕시코, 나이지리아, 트리니다드 토바고 혈통의 3명의 활동가들은 온실가스 배출로 막대한 부를 쌓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도울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영국 법원은 여러 이유로 해당 사건을 심리하지 않고 있는데요. 영국 정부는 해당 소송에 대해 “현재 진행 중인 법적 절차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해당 청문회도 보류된 상황이나, 기후정의운동가 3인의 목소리는 미디어를 통해 또렷이 전해져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 AllRise 제공

3️⃣ ICC 기소만 6번째, 아마존 파괴 책임을 묻다 🌲

지난 10월 12일(현지시각) 기후·환경법 전문 변호사로 구성된 국제환경단체 ‘올라이즈(AllRise)’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했습니다. 올라이즈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를 방치하거나 부추긴 행위가 ‘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올라이즈는 성명을 통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행위는 아마존과 아마존을 지키는 이들에 대한 공격’이며 ‘이는 지역에서 박해와 살힌, 비인간적인 고통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에 의하면, 보우소나루 대통령 취임 전인 2009년부터 2018년 까지 아마존 열대우림의 연평균 벌채 면적은 6,500㎢였습니다. 그러나 보우소나루 대통령 취임 이후 아마존 연평균 벌채 면적은 1만 500㎢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또 불법 벌목에 부과된 벌금은 취임 1년 사이 42% 가량 감소했죠. 올라이즈는 보우소나루 정부의 아마존 파괴 정책으로 기후변화가 가속화 돼 약 18만 명의 온열질환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올라이즈 이전에도 ICC에 고발당한 전적이 있습니다. 지난 1월 아마존 원주민인 카야포 부족의 지도자가 환경 파괴와 생존 위협을 비판하며 그를 ICC에 고발했으며, 지난해 3월에는 브라질과 세계 각국 인권단체가 원주민 인권 침해를 이유로 고발한 바 있습니다.

 

© 2018년 1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기후정의 시위 현장 모습 Klimaatmars 제공

“당신은 노화로 죽을 것이다. 나는 기후변화로 죽을 것이다” 🌡️

위 문장은 2019년 기후 파업 당시 울려퍼진 구호 중 하나입니다. 기후변화는 최빈국가, 취약계층에게는 당장의 생존과 직결돼 있습니다. 오염된 지구를 살아갈 다음 세대. 즉, 청소년들에게는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조아나 세처 그랜섬연구소 세계기후변화법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기후 소송 사례 상당수가 청년들에 의해 제기되며, 이 사실에 강력한 무게가 있다“며 ”어린이와 젊은이가 기후변화의 악영향을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는데요. 그러나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입안 등 실효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은 기후변화에 둔감한 환경에서 자란 기성세대이죠.

지금도 청년을 필두로 한 기후 소송은 세계적으로 확산 중이며, 이러한 움직임은 분명한 성과를 일궈내고 있습니다. 국가 간, 세대 간 불안을 바로 보고 지구촌이 합심해 구조적 변화를 꾀하지 않는 이상 인류의 미래는 암담할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분명한 책임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