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는 있어도, 포장재는 없어요! 🗑️

우리는 일회용품이 주는 편리함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커피와 함께 건네는 일회용컵과 빨대, 채소를 감싸고 있는 비닐,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 있는 복숭아처럼 일회용품은 일상 곳곳에 자리하고 있죠.

사실 이와 같은 포장재는 재활용이 어려운 쓰레기 중 하나인데요. 우리나라의 경우 ‘일회용 플라스틱’에 대한 법적 정의가 불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과일과 채소에 쓰이는 비닐 포장재, 과자 봉지, 음료 용기 등의 플라스틱 포장재는 ‘일회용품’에 속하지 않아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죠. 그렇다면 우리는 포장재를 거부할 수 있을까요?

최근 소비자 차원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는 흐름이 두드러지자, 전 세계적으로 포장재 없는 제로웨이스트(ZeroWaste) 상점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평소 식자재를 구매할 때 원치 않는 포장재까지 함께 구매했던 방식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들의 서비스를 눈여겨보세요!

 

© Original Unverpackt, 페이스북 갈무리

포장재가 없으면, 재활용도 필요 없어! 🇩🇪

유럽에서는 2010년대부터 포장재 없는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본격적으로 성행하기 시작했는데요. 그중 최전방에서 제로웨이스트 문화를 이끌어온 독일의 ‘오리지널 운버펙트(Original Unverpackt)’입니다. 이 매장은 매년 독일에서 버려지는 1,600만 톤의 포장재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죠.

운버펙트 설립자인 밀레나 글림보포스트키사라 볼프는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재활용할 필요가 없다’는 역설을 파악한 후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운영하게 됐다고 합니다. 누군가 위생상 포장재는 꼭 필요한 장치가 아니냐고 묻자 이들은 “이미 자연이 과일과 채소를 보호하기 위해 껍질이라는 피부를 덧씌우는데, 비닐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라며 포장재의 무용함을 밝히고, 재활용 가능 여부에 상관없이 불필요한 포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이들은 2015년 베를린에 첫 매장을 여는데요. 운버펙트에 방문한 고객은 과일·채소·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 자신이 준비한 용기 혹은 장바구니를 꺼내야 한다고. 고객들은 지참한 용기에 식료품을 채워 무게를 잰 후 담은 만큼의 금액만 내면 되는데요. 꼭 필요한 양만을 구매할 수 있기에 버려지는 음식의 양도 줄일 수 있고, 가격도 포장된 식품보다 저렴하다고 합니다.

운버펙트는 신선식품과 세정제, 메이크업 제품, 책 등을 판매 중이나, 보관이 까다로운 냉동·냉장 식품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많은 이에게 사랑받자 운버펙트의 베를린 스토어를 기점으로 독일과 유럽 전역에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증가하게 됐다고.

 

© NADA, 페이스북 갈무리

포장 없이 내용물만 판매하는 식료품점 🇨🇦

유럽에 운버펙트가 있다면, 캐나다에는 ‘나다 그로서리(NADA Grocery)’가 있습니다. 나다의 CEO이자 해양생물학자인 브리안 밀러는 산호초와 열대어 연구를 위해 전 세례를 여행하던 중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 파괴를 목격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다를 구상하게 됩니다.

그는 그동안의 연구와 작업을 통해 환경 파괴와 관련한 대다수 문제가 식량 공급 시스템과 연결돼 있음을 깨닫는데요. 이에 브리안은 지속가능한 식품 시스템 구축에 돌입하게 되고, 2018년 6월 캐나다 최초로 제로웨이스트 식료품점 나다를 오픈합니다.

나다에서는 거의 모든 식자재를 만날 수 있는데요. 포장재만 없을 뿐, 기존의 슈퍼마켓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죠. 심지어 타 제로웨이스트 식료품점에서 보기 힘든 기름, 굴, 식초, 조미료 등도 리필 스테이션이 구비돼 있습니다.

다회용기를 매장에 가져오도록 권장하지만, 우연히 들어온 손님이나 다회용기를 깜빡한 경우에는 매장에 비치된 항아리를 사용합니다. 계산대에서 용기의 무게를 측정하고, 무게 만큼의 가격을 제외한 후 결제하는 시스템을 갖췄지요. 나다는 단순히 식료품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생활 양식 변화를 이끌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상당수 식료품점의 골칫거리인 음식물 쓰레기 문제에서는 신선 식품을 기간 내에 소진하기 위해 수프나 스무디로 만들어 판매하는 등 자체적인 순환 시스템을 운용해 ‘음식물 쓰레기 0%’라는 탁월한 성과를 보여줍니다. 또한, 일상 속 제로웨이스트 가치를 실천하게끔 도와줄 워크샵도 주최하죠. 그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워크샵은 부서지거나 찢어져 손상된 가정용품을 버리지 않고 수리하는 ‘리페어 워크샵’이라고 합니다.

 

© 마르쉐, 페이스북 갈무리

포장재 대신 사람, 관계, 대화가 있는 시장 🇰🇷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친환경 물결에 맞춰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전국 각지에 들어서고 있는데요. 이 중 주목할 만한 곳은 당연 ‘마르쉐(Marche)’입니다. 프랑스어로 장터, 시장을 뜻하는 마르쉐는, 생산자와 대면하는 도심 속 시장을 뜻하는데요.

마르쉐는 다품종 소량생산 농가와 가족농이 도시 소비자와 만나 농산물을 매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입니다. 나아가 돈과 물건의 교환만이 아닌 ‘사람과 관계 그리고 대화가 있는 시장’을 목표로 하는데요. 마르쉐는 2012년 10월 혜화에서 시작해 양재, 명동, 성수 등에서 월 2회 장터를 열었으나, 현재는 월 1회로 변경됐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마르쉐는 보통 70여 팀의 농민·요리사·예술가들이 참여했는데요. 신선한 채소와 곡식들, 건강한 요리, 예술가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마르쉐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는 일회용품, 포장재 사용을 지양한다는 점입니다. 판매자가 별도의 포장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는 다회용기 혹은 장바구니를 사용해야 하는데요. 마르쉐를 방문하는 많은 이들은 이와 같은 ‘불친절함’에 매력을 느끼기에 장터가 열릴 때마다 참여합니다.

이밖에도 마르쉐는 자체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업과 제로웨이스트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 입니다. 그중 하나인 ‘지구 농부 프로젝트’는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토양으로 돌려보내는 ‘재생유기농업’을 지향하는 농부들을 ‘지구 농부’라 일컬으며 이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건강한 소비를 촉진함으로써 재생유기농업을 지지하고 있지요.

 

© Jasmin Sessler, UNSPLASH

또한, ‘쓰레기 없는 시장 리포트’를 통해 제로웨이스트 실천하는 내용을 공개했는데요. 해당 리포트에는 ‘용기를 재활용하는 출점팀에서 구매한 용기는 다음 시장에서 되돌려주기’, ‘종이 가방과 신문지를 모으는 다시 살림 부스’, ‘오래된 밀폐 용기 수거함’ 등을 만들어 매월 쓰레기 없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포장재를 거부할 수 있는 대체재를 찾고 있습니다. 소비 후 뒤따라오는 폐기 그리고 다시 생산으로 이어지기까지. 어쩌면 생산과 유통의 단계에서부터 지구에 무해한 폐기를 염두에 두는 것이 건강한 서비스가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결국, 버려질 포장재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이들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