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오늘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한달이 됐습니다. 전쟁이 갈수록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원유·천연가스·밀 등 세계 에너지·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주요 공급망 혼란도 악화하고 있는데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스포츠계도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유럽축구연맹(UEFA)는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인 가즈프롬(Gazprom)과의 계약을 취소했다고 밝혔습니다. UEFA는 가즈프롬과 2012년부터 후원을 맺고 있고, 2024년까지 계약을 연장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요.

UEFA는 우크라이나를 사태에 따라 러시아를 압박하고자 계약을 취소했습니다. 더불어 러시아 대표팀과 클럽팀의 UEFA 주최 대회 참가도 금지됐죠. 약 4,000만 달러(한화 약485억원)의 계약이 파기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비슷한 시기 독일 프로축구 2부 분데스리가 샬케04도 가즈프롬과의 계약을 조기 종료한다고 밝혔습니다.

 

© 2003년 러시아 억만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 구단을 구매했다_Chelsea Gazette. Facebook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 매각 앞세워 국가 이미지 세탁한 러시아 🇷🇺

유럽 축구에 공들여온 러시아 입장에서는 속이 쓰린 소식입니다. 사실 일각에서는 러시아 정부가 가즈프롬 등 에너지기업을 이용해 ‘스포츠워싱(Sportswashing)’을 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요. 여러분은 스포츠가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단 사실, 알고 계셨나요?

스포츠워싱은 국가나 기업이 스포츠나 대회 등을 이용해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는 것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러시아의 경우 가즈프롬을 앞세워 유럽 축구 내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고, 뒤에서는 에너지 공급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단 말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것이 스포츠워싱이 아니냔 것이 주된 의견입니다.

특히, 거액이 투입되는 국제적 스포츠 구단 인수나 후원에는 언제나 논란이 따라붙습니다. 가령 러시아 억만장자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2003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소속 첼시 구단을 1억 4,000만 파운드(한화 약 2,255억원)에 인수했을 당시 스포츠워싱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는데요. 아브라모비치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만큼, 첼시 구단 인수 소식에 러시아 정부 배후설이 떠돌았죠.

이는 얼마전 아브라모비치의 첼시 구단 매각 소식에 다시 불거졌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아브라모비치는 성명을 통해 “자선사업 재단 설립을 지시했다”며 “구단 매각으로 얻는 순수익금은 이곳에 기부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그는 이어 재단은 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 모두를 위해 활동될 것“이라고 설명했죠.

첼시 구단 매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아브라모비치 자산 압류 등 금융 제재에서 비롯됐는데요. 아브라모비치는 여러 논란으로 첼시를 매각한다고 발표했으나, 매각조차 이미지 세탁에 이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여기에 아브라모비치가 첼시 매각 후 터키 수페르리그의 괴즈테페 인수를 위해 협상을 시작했단 보도가 나오며 팬들의 실망감은 더 커진 상황.

 

© 2019년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 올림픽경기장에서 유로파리그 결승전이 열렸다_UEFA 제공

오일머니에서 시작된 단어, 스포츠워싱 💸

그렇다면 스포츠워싱이란 단어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이 단어는 2015년 카스피해 인접국인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카스피해 석유 유통 중심지로 알려진 아제르바이잔은 이른바 오일머니로 막대한 부를 쌓은 국가인데요. 동시에 주요 인권단체로부터 언론인 탄압과 일반인 고문 등 인권 침해로 비난을 받는 나라죠.

이에 아제르바이잔은 대형 스포츠 행사 유치 및 투자를 통해 이미지 세탁에 나섰는데요. 2015년 수도 바쿠 올림픽경기장에서 ‘제1회 유러피언 게임’을 개최했고, 이듬해인 2016년 세계 최고 모토스포츠 대회 포뮬러원(F1) 개최했습니다.

당시 막대한 투자를 진행한 덕에 ‘유러피안 그랑프리’였던 대회 이름이 이듬해인 2017년부터 ‘아제르바이잔 그랑프리’로 변경되기에 이릅니다. 이밖에도 아제르바이잔은 2019년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결승전 등 대형 스포츠 행사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요.

결과적으로 세계인들은 아제르바이잔의 인권 탄압 문제보다 유명인들이 등장하는 대형 스포츠 행사를 더 많이 접하게 됐습니다. 영국 BBC는 아제르바이잔의 스포츠워싱 문제를 보도하며 “검색엔진에 아제르바이잔을 입력하면 F1이나 운동경기가 연관검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인권 탄압 단어는 저만치 밀려났다”고 전했죠.

 

© 마이크 애슐리 뉴캐슬 유나이티드 구단주에게 ‘떠나라’고 요구하는 팬들_페이스북 갈무리

사우디 오일머니에 넘어간 뉴캐슬… ⚽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스포츠워싱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국가입니다.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3억 파운드(한화 약 4,800억원)에 인수했는데요.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 반체제 인사 투옥 및 이웃 국가 예멘과의 분쟁 등으로 불거진 인권 탄압 문제를 사우디가 프로축구 인기를 이용해 스포츠워싱을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죠.

당시 유럽 주요 인권단체들은 물론 EPL 구단 상당수가 반발했는데요. 결국, 게리 호프만 EPL 회장은 사우디의 스포츠워싱 논란에 사임했습니다.

사우디의 프로축구 구단 인수 소식에 비영리인권단체 그랜드 리버티(Grant Libety)는 “최근 몇 년간 사우디가 스포츠워싱을 위해 15억 달러(한화 약 1조 7,000억원) 이상을 지출했단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는데요.

그랜드 리버티는 보고서를 통해 사우디가 인권탄압국이란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 스페인 슈퍼컵(수페르코파)·국제 골프 토너먼트·다카르 랠리 등 대규모 스포츠 대회 유치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단 점을 전했습니다. 이에 그랜드 리버티 대변인은 “사우디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 스타들의 평판을 이용해 인권 탄압, 잔혹성, 고문, 살인을 은폐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가 호주 석유·가스 생산기업인 산토스와 파트너십을 맺었단 소식_350 Austrailia, 트위터 갈무리

스포츠 뒤에 숨은 기후변화 ⚽️

앞서 살펴본 사례 이외에도 스포츠는 여러 문제를 가리고,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올 초 막을 내린 베이징동계올림픽도 스포츠워싱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요. 소수민족 및 홍콩 인권 탄압 등을 앞세운 중국이 대형 스포츠 행사를 통해 깊은 그늘을 지우려고 한 것이 아니냔 비난이 일었죠.

그렇다면 스포츠워싱이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단 것일까요? 기후변화 관련 단체인 래피드 트랜지션 얼라이언스(Rapid Transition Alliance) 산하 싱크탱크 ‘뉴 웨더 인스티튜트(New Weather Institute)’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포츠 구단·대회와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간의 스폰서십 계약은 기후 대응 노력에 악영향을 미치는데요.

보고서에 의하면 축구·크리켓·테니스 등 13개 스포츠 종목을 한 조사에서 스폰서십 거래는 250건이 넘는데요. 이 중 계약이 가장 많은 종목은 축구로 총 57건의 스폰서십 계약이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주로 석유 및 가스기업, 항공기업, 자동차기업 등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들과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죠.

스폰서십 계약에 따라 선수들의 유니폼, 경기장 이름 권리 등이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들에게 넘어갔는데요. 보고서는 이는 곧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들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고, 종국에는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노력을 감소시킨다고 강조했습니다.

 

© 프리미어리그 에버턴-뉴캐슬전이 열린 구디슨 파크에 난입해 골대에 몸을 묶은 남성_Just Stop Oil, 페이스북

+ 스포츠워싱을 막기 위해 골대로 뛰어든 사람도 있다는데? 🇬🇧
지난 18일(현지시각) 영국 리버풀의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에버탠과 뉴캐슬의 경기 도중 한 남성이 골대에 자신의 목을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 골대에 묵었습니다. 곧장 보안 요원들이 달려와 시위 남성을 끌어낼 때까지 경기는 7~8분 동안 지연됐는데요.

시위 남성의 주황색 티셔츠에는 ‘Just Stop Oil’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해당 남성이 소속된 환경단체는 성명을 통해 북해 유전 개발에 반대하기 위해 해당 시위를 진행했다고 밝혔는데요. 일각에서는 뉴캐슬의 소유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를 겨냥한 경고란 의견도 대두됐습니다. PIF가 뉴캐슬의 최대 지분 80%를 소유하고 있는 만큼, 환경단체 등이 오일머니의 스포츠워싱을 더는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란 해석도 있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