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넛지’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한때 서점가를 휩쓸었던 베스트셀러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영어 사전에 ‘Nudge(넛지)’를 검색하면 ‘팔꿈치로 쿡쿡 찌르다’라는 의미가 나옵니다.

다시 말해, 넛지는 힘에 의한 강요가 아닌 팔꿈치로 툭 치듯 부드러운 개입으로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힘을 말하죠. 우리 일상 속에서도 다양한 넛지들이 스며들어 있는데요. 놀랍게도 지구를 지키는 노력에도 넛지의 힘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이산화탄소 배출 방식에 오랫동안 의존해온 덕분에 우리는 빠른 성장과 발전을 이룩했지만 지구의 환경은 파괴됐습니다. 다시 환경 보호에 눈을 돌리려니 빠른 성장을 보증했던 지난 날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죠.

이런 상황을 감안했을 때, 강압적인 방식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고 자발적인 노력에 맡기려니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넛지의 힘이 필요한 것이죠.

 

© ‘넛지’_리처드 H .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

교토의정서에서 처음으로 시장원리에 입각한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Emissions Trading Systems, ETS)’가 제안됐는데요. 온실가스 감축 수단을 이용해 국가와 기업들이 구체적인 목표 이행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으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도입된 것이죠. 지난해 세계은행은 전 세계 46개국, 32개 지방 정부가 탄소배출권 같은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를 실행하고 있거나, 계획 중이라 밝혔는데요.

 

너 때문에 환경오염 심각해졌으니, 책임져 😡

경제학에는 외부효과란 개념이 있습니다. 외부효과는 나의 행위가 다른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이때 손해를 입혔다면 ‘부정적 외부효과’, 이익을 주었다면 ‘긍정적 외부효과’라 부르죠.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 배출은 부정적 외부효과로 볼 수 있는데요. 기업이나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급격한 지구온도 상승 등 기후변화를 유발시킨 것입니다.

합리성을 중시하는 경제학. 손해가 발생할 경우 그냥 넘어가는 법은 없는데요. 당연히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르게 하죠. 대표적인 방법으로 ‘피구세’가 있는데요. 영국의 경제학자인 아서 세실 피구가 제안한 피구세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세정책 중 하나인데요. 공해를 일으킨 생산이나 소비활동에 세금을 물리는 방식입니다.

탄소가격제 중 하나인 탄소세도 피구세의 일종인데요. 국제무역에서 과도한 탄소배출을 한 기업이나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국내 탄소배출 기업에 세금을 물리는 등 부정적 외부효과에 대한 값을 치르게 하는 등 피구세와 같은 논리죠.

한편, 탄소가격제 중 하나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는 탄소 배출을 시장 내부로 끌여들여 ‘외부효과’을 없애는 방법인데요. 탄소 배출 행위를 하나의 권리로 만들어 직접 시장에서 거래되도록 하는 것이죠. 마치 주식을 거래하는 증시와 같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 Aïda Amer, Axios 갈무리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힘? 탄소세! 💵

탄소세(Carbon Tax)는 탄소가격제도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제도로 평가 받습니다. 탄소세는 이름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이산화탄소에 가격을 부여하는 것인데요. 석유, 천연가스, 석탄 같은 화석연료에 함유된 탄소량에 따라 이를 사용하는 기업 등에 부과하는 세금입니다. 화석연료를 사용할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셈이죠.

탄소세를 부과하면 소비자와 기업들은 세금으로 비싸진 화석연료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자연스럽게 찾을 수밖에 없는데요. 앞서 언급한 ‘넛지’의 원리를 여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90년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탄소세를 도입했는데요. 지난해 세계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25개국이 탄소세를 시행 중이라 합니다. 탄소세가 가장 높은 나라는 스웨덴으로 탄소세율이 환산 톤당 119달러로 가장 높고, 우크라이나와 폴란드가 1달러 미만으로 가장 낮습니다. 아시아의 경우 일본과 싱가포르가 탄소세를 도입했으며, 우리나라는 현재 탄소세 도입을 검토 중입니다.

기후대응 으뜸 국가로 꼽히는 북유럽 3국(스웨덴·핀란드·덴마크)은 탄소세와 함께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시행하여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탄소세와 배출권 거래제와의 중복 규제를 최소화해 탄소세 도입 시 급격한 조세 부담 증가를 막기 위한 노력도 함께 병행하고 있습니다.

 

© CHUTTERSNAP, UNSPLASH

탄소배출 티켓? 경제와 친환경을 동시에 잡아! 🎟️

넛지의 논리가 적용되는 또 하나의 탄소가격제가 바로 탄소배출권입니다. 탄소배출권은 배출권을 가진 회사가 일정량의 이산화탄소나 온실가스를 배출하도록 허용하는 제도인데요. 쉽게 말해 일종의 티켓 같은 것이죠. 탄소배출권은 결과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행동으로 이어지기에 배출권이란 장치가 넛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탄소배출권은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단 점에서 ‘시장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죠.

앞서 각 기업의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제도를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라 부른다고 했는데요. 배출권 거래제도는 크게 총량거래제도와 감축 크레딧 제도로 구분됩니다. 총량거래제도는 탄소배출량이 감축 목표보다 적다면 나머지 배출권리를 시장에 판매하여 수익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축 목표보다 탄소배출량이 더 많으면 배출권이 여유 있는 국가에서 배출권을 사들여야만 하죠. 감축 크레딧제도는 목표 감축량을 정하고 그 목표치보다 실제로 적게 배출했다면 그 차이를 크레딧으로 인정한 후 거래하는 제도입니다. 이 두 제도는 보통 같이 결합하여 운영됩니다.

탄소배출권의 가격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경기가 호황이면 화석연료를 비롯한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는데요. 이는 곧 온실가스 배출 증가로 이어집니다. 그럼 기업이나 국가들이 정해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이행을 위해 탄소배출권 구매가 증가하는 등 수요가 증가하여 가격이 오르게 되는 것이죠.

 

© 전 세계 ETS와 탄소세 시행 현황_World Bank, 2020 Report

떠오르는 유망주, 크레딧 메커니즘 🤝

최근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크레딧 메커니즘(Carbon Crediting Mechanism)’의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는 프로젝트 결과물로 발생한 탄소배출량 감축분을 3자 검증을 거쳐 크레딧으로 인정받고 배출권이 필요한 기업에 판매하는 제도죠.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크레딧 프로젝트는 약 1만 4,500개 이상에 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크레딧 메커니즘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미국의 VCS(Verified Carbon Standard), 일본과 필리핀의 공동 크레딧 메커니즘인 JCM(Joint Crediting Mechanism)인데요.

JCM은 일본 기업의 친환경 기술이나 제품을 다란 나라에 이전하거나 보급하는 과정에서 감축해내 온실가스를 일본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량(NDC)으로 인정받기 위한 양자 협력 프로젝트입니다. JCM은 현재 몽골, 방글라데시아,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멕시코, 칠레 등 16개국 사이에서 구축이 이뤄지고 있죠.

 

앞으로의 환경 규제 현황을 말한다면 🗣️

파리협정에서도 탄소가격제는 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이며, 관련 규제도 강화될 전망으로 보입니다. 또한, 각국 정부는 기후 관련 목표를 강화하기 위해 기존 탄소가격 책정 시스템의 범위를 넘어 상호 보완적인 탄소가격 책정 계획도 고려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독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에서는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시스템(EU-ETS)’에 포함되지 않은 부문에 대한 탄소가격 책정을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불어 2050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는 EU 그린딜은 탄소가격 책정의 더 넓은 범위 적용을 시도하고 있죠.

탄소가격제는 배출량 감축을 목표로 실질적인 감축 효과까지 내고 있어 정교한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가격(Price)’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개입으로 행동 변화까지 달성한다는 점에서 넛지의 논리 역시 부합하죠.

 

© Ella Ivanescu, UNSPLASH

물론, 탄소가격제를 모두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화석연료나 온실가스 의존이 컸던 기업이나 국가 입장에선 당장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으라고 하니 억울할 수밖에 없죠. 고속도를 달리다 보면 하이패스 차로를 나타내는 색깔 도로를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빠른 속도로 쌩쌩 달리는 차량의 요금소 안전 진입을 위해 도입된 것으로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제는 없으면 허전할 만큼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탄소가격제도 하이패스용 색깔 도로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낯설고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만 탄소중립이라는 지구촌 공동의 목표를 위해 배출량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좀 더 과감하게 목표를 상향 조정하여 탄소중립의 시간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