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매년 사용되는 일회용 기저귀만 최소 30억 개 이상.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약 20억 개였던 일회용 기저귀 사용량은 2017년에 30억 개를 넘겼는데요. 지난 7월 15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위생용품 공급(생산·수입)실적 통계’에 따르면 기저귀 사용량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처럼 일회용 기저귀 폐기물 문제가 심각하나, 여전히 일회용 기저귀가 사랑받는덴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천기저귀의 불편함 때문입니다. 손이 많이 갈뿐더러, 냄새와 위생 문제 때문에 천기저귀에 도전한 많은 부모가 골머리를 앓는데요.

그럼에도 천기저귀를 포기하긴커녕, 천기저귀를 더 손쉽게 만드는 솔루션을 찾아낸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부모가 천기저귀를 더 쉽게 사용하게 하는 것”이라 선포한 임팩트테크* 스타트업 피카(Pika)의 이야기입니다.

*임팩트테크: 책임 있는 기술을 활용해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과 지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술을 말한다.

 

© 피카(Pika)는 천기저귀 세탁을 돕는 기술을 개발해 일회용 기저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는 임팩트테크 스타트업이다_Pika, Instagram 갈무리

2500억개의 기저귀 쓰레기 해결하기 위해 나선 임팩트 기업, 피카 👶

일회용 기저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팩트테크 기업 피카(Pika). 2021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설립된 피카는 천기저귀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입니다.

피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아이들이 소변과 대변을 부르는 말인 ‘피피(Pipi)’와 ‘카키(Kaki)’에서 따왔는데요.

해외 통계 사이트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기저귀 산업 규모는 477억 달러(한화 약 63조원)에 달했습니다. 피카는 매년 전 세계에서 2,580억 개 이상의 일회용 기저귀가 버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피카는 일회용 기저귀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천기저귀의 세탁과 관리가 편리해야 한단 점에 주목했습니다.

버리고 새것을 꺼내면 끝인 일회용 기저귀와 달리, 천기저귀는 세탁이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일반적인 빨래와 다르게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배설물을 변기에 버리고, 물에 담가 불린 다음 세탁기에 돌려야 하는데요. 얼룩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거나 고약한 냄새가 날 수 있어 전용 세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한편, 흡수성이 뛰어난 플라스틱이 사용된 일회용 기저귀와 비교하면 천기저귀는 흡수력이 약합니다. 일일 사용 개수도 더 많습니다. 이는 그대로 빨래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피카의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알론 코헨은 “이 모든 것들이 많은 부모가 천기저귀 사용을 주저하게 만든다”고 말하는데요. 피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들이 지속가능한 천기저귀를 더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피카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피카 시스템에서는 재사용 가능한 천기저귀와 전용 세제인 피카 포드(Pika Pod), 올인원 세탁기인 피카 퓨어(Pika Pure)를 제공하는데요.

 

© 피카의 공동설립자이자 CEO인 알론 코헨(왼)이 순환경제 스타트업 가속을 위한 싱크탱크 서큘러밸리(Circular Valley)에 참여해 피카의 비즈니스모델을 소개하고 있다_Pika Facebook 갈무리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천기저귀를 빨 수 있다면? 💦

코헨 CEO가 피카를 설립하게 된 계기, 첫 아이의 탄생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면서 편리하지만 너무 많은 쓰레기가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는데요. 이에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아내에게 천기저귀로 바꾸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코헨에게 ‘좋은 생각이지만, 당신이 모든 세탁을 맡아야 한다. 나는 이미 너무 바쁘다’고 답했는데요.

코헨 CEO는 직접 천기저귀를 사용하고 세탁하면서, 천기저귀 관리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몸소 느꼈습니다. 인터넷과 페이스북 그룹의 게시글을 아무리 뒤져도 천기저귀의 얼룩을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는데요. 그렇다고 다시 일회용 기저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더 쉽게 세탁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가장 먼저 일반 세탁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세제를 고안했습니다. 코헨은 세탁 단계를 줄이기 위해 아이들의 용변을 사전 처리하지 않아도 세탁할 수 있는 세제를 원했습니다. 때문에 소변과 대변을 녹이는 전용 효소와 세척제인 피카 포드를 개발했는데요. 덕분에 2차 세탁이 없이도 곰팡이나 얼룩 없이 위생적인 재사용이 가능해졌습니다. 세탁은 더 간편해졌고 세탁 시간도 단 2시간 이내로 줄어들었는데요.

 

© 피카 퓨어를 사용하는 방법. 뚜껑을 열고(왼) 피카 포드와 천기저귀를 최대 10장까지 넣은 뒤 세탁 버튼을 누르면 끝이다_Pika 제공

그러나 몇 번의 실험 뒤, 그는 세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적정량의 빨래가 모일 때까지 냄새 걱정 없이 사용한 기저귀를 보관할 공간과 용변이 분해된 물을 적절히 처리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인데요. 이에 코헨은 기저귀의 보관과 세탁이 모두 용이한 올인원 세탁기인 피카 퓨어를 개발했습니다.

피카 포드(세제)와 피카 퓨어(세탁기)는 천기저귀 세탁을 단 3단계로 줄였습니다. 사용한 천기저귀를 피카 포드와 함께 피카 퓨어에 집어 넣고, 버튼을 누른 뒤, 2시간만 기다리면 끝인데요. 아직 건조 기능은 없지만 앞으로 기능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개발을 마친 피카 시스템은 지난 2021년 4월, 이스라엘에서 첫선을 보였습니다. 매달 99달러(한화 약 13만원)에 월 30개의 피카 포드(세제)와 피카 퓨어(세탁기) 대여가 포함되는데요. 기존의 천기저귀를 사용할 수도 있고 전용 기저귀인 피카 팬츠(Pica Pants)를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 피카는 한 명의 아이가 자라는 동안 6,500개의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지만 재사용이 가능한 천기저귀로 대체하면 30개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_Pika Facebook

피카와 함께라면 쓰레기도, 자원 낭비도 줄일 수 있어! 💨

아이들은 자라는 동안 한 명 당 최대 6,500개의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며, 그 무게만 1.5톤에 달합니다. 코헨은 전 세계 아이들이 일회용 기저귀 대신 피카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1,860만 톤의 온실가스와 3,100만 톤의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요.

뿐만 아니라, 일회용 기저귀의 목재 펄프와 플라스틱에 사용될 2,200톤의 석유와 1,300만 톤의 나무를 절약할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일반적인 천기저귀를 사용할 때와 비교해도 자원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복잡한 세탁 단계와 긴 소요시간 때문에 한 명 당 30개의 기저귀를 사용하지만, 피카 시스템은 세탁 단계를 줄여 그 절반만 사용해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사용도 최적화해 일반적인 천기저귀 세탁 시에 비해 약 6분의 1의 에너지만 사용되는데요.

비용 면에서도 일회용 기저귀와 비슷하거나 더 저렴합니다. 지난 3월 한국소비자원은 팬티형 기저귀 9개를 조사한 결과, 일회용 기저귀의 가격은 개당 233원에서 402원으로 천차만별인데요. 하루 15개 사용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한 달에 평균 14만 원가량이 지출됩니다.

이에 비하면 피카의 현재 한 달 구독료는 99달러(한화 약 13만원)입니다. 피카는 현재 구독료가 저렴한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할 때보다 높을 수 있지만,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구독료를 더 저렴하게 낮출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부모는 피카 퓨어의 내장 센서를 통해 아이들의 용변에서 수집된 영양 정보를 휴대폰의 앱으로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 피카는 피카 퓨어(세탁기)를 판매하는 대신 구독(임대) 서비스로만 제공한다_Pika 홈페이지 갈무리

피카 퓨어, “구입하지 마세요, 다른 아이에게 양보하세요” 🙏

천기저귀 세탁의 혁신을 이뤄낸 피카 시스템. 이에 피카 시스템의 피카 퓨어(세탁기)만 따로 구입하고 싶다는 요청도 쏟아졌는데요.

하지만 피카는 구독서비스 방식을 고수합니다. 쓸모를 다한 피카 퓨어가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요. 사실 대부분의 육아용품은 아이의 발달주기에 맞춰지기 때문에 사용 기간이 짧습니다. 일반적으로 생후 18개월에서 24개월을 아이들이 기저귀를 떼는 시기로 보는데요. 즉, 피카 시스템을 사용하는 기간도 길어야 2년 내외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피카는 피카 퓨어를 판매하는 대신 구독 방식으로 임대합니다. 기저귀가 필요한 동안에는 피카 퓨어를 사용하고, 필요한 기간이 끝나면 다시 반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인데요. 반환된 피카 퓨어는 수리를 거쳐 새로운 고객에게 다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재사용, 재활용, 수리를 통해 자원을 가능한 한 오래 사용해서 낭비를 줄이는 지속가능한 경제 모델을 ‘순환경제’라고 일컫습니다. 피카는 지구가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도록 순환경제를 통해 플라스틱 사용을 끝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합니다.

 

© iStock

피카는 지난해 4월 이스라엘에서 구독 서비스를 론칭한 후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코헨은 이스라엘 구독자의 반응이 매우 뜨거우며 ‘피카가 없으면 천기저귀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피카는 곧 미국에서도 서비스를 론칭할 계획입니다. 오는 10월에는 샌프란시스코의 Bay Area에서 파일럿 서비스를 출시하는데요. 피카는 향후 6개월 이내에 유럽으로도 확장할 예정인데요.

이에 더해, 어린이집과 병원 등에도 피카 시스템을 설치하고 사용한 천기저귀를 보관할 수 있는 생분해성 가방을 제작해 아기들이 집 밖에서도 천기저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 더 손쉽게 천기저귀를 사용할 방법, 한국에선 없을까? 🇰🇷
우리나라에서도 천기저귀 사용을 대중화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피카가 집에서도 손쉽게 세탁할 수 있는 솔루션을 고안했다면, 우리나라는 수거부터 세탁까지 모든 과정을 대신 처리해주는 천기저귀 대여 사업이 있습니다. 전주지역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전국 유일의 천기저귀 대여사업인 ‘보드레 천기저귀 사업단’인데요. 2015년 사업을 시작해, 천기저귀의 수거·세탁·배송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업단에서는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아침 새 기저귀를 배송하고 사용한 기저귀를 수거합니다. 아이의 이니셜을 새긴 전용 천기저귀는 애벌세탁과 고온 살균 세탁을 거치는데요. 90도 이상의 살균 건조로 말리고 개별 포장돼 다시 소비자에게 배송됩니다. 이용료는 한 달에 단 2만 원으로 저렴한데요. 그럼에도 천기저귀는 불편하다는 인식 때문에 사업단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