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 디자인 전시 행사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 design week)’에서 화제를 모은 부스가 여럿 있었는데요. 그중 스튜디오 트라치오(Traccia)가 내놓은 식탁이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습니다. 언뜻 봐서는 나무로 만든 평범한 식탁 같은데요. 실제로는 버려진 옥수수와 조개껍질 같은 식품 폐기물로 만들었단 사실! 식탁 위 올라간 소품들도 모두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가구와 인테리어 업계에도 친환경 바람이 불어온 가운데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을 넘어 소재 전쟁까지 펼쳐지고 있단 소식을 준비해 봤습니다.

 

가구 시장에 불었던 ‘패스트’ 바람의 반작용! 🪑

패스트푸드, 패스트 패션이란 익히 들어보셨을 법한데요. 혹시 ‘패스트 퍼니처(Fast Furniture)’란 단어도 들어보셨나요? 빠르고 대량으로 찍어내는 중저가 가구를 뜻하는데요. 유행을 반영한 디자인, 저렴한 가격 등으로 신혼부부와 1인 가구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죠. 그러나 패스트 퍼니처는 유행이 지나면 쉽게 폐기돼 쓰레기가 대량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는데요. 또 가구 제작에 쓰인 마감재 및 접착제가 방출하는 화학물질도 문제로 꼽혔습니다.

가구 디자이너와 제조업체들은 무분별한 제품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에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이에 대한 대안을 찾으려는 중인데요. 크게 폐기물을 재활용 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 디자인을 추구하거나, 재생가능한 신소재 개발을 택하고 있습니다.

 

© 브라질 출신 캄파나 형제가 만든 파벨라 의자_Favela, 홈페이지

사실 업사이클링 가구는 질 나쁜 상품으로 간주돼 상품적으로 큰 가치를 얻지 못했는데요. 1990년대 후반부터 젊은 디자이너들이 폐목재, 폐섬유, 폐플라스틱 등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고, 제품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하면서 세간의 인식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업사이클링 가구의 선구자로는 피트 하인 이크란 산업 디자이너와 캄파나 형제가 언급됩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 피트 하인 이크는 1990년에 폐목재를 재활용해 만든 가구 ‘스크랩우드(Scrawood)’ 시리즈를 선보였는데요.폐목재의 흠집, 색깔, 질감, 강도 모두 달라 어느 가구 하나 똑같은 것이 없었죠. 폐목재 질감을 그대로 살린 독특한 가구와 소품 디자인은 당시 큰 반항을 불러 일으켰는데요. 이듬해 브라질 출신의 캄파나 형제는 ‘파벨라 의자(Favela Chair)’를 내놓았습니다. 목재소에서 나무를 가공하고 남은 자투리 조각들을 이리저리 붙인 의자로, 각각의 조각은 브라질 사회를 가르는 인종차별과 빈부격차 등을 상징했죠.

위 두 사례가 선보인 직후, 가구 디자이너들 사이에선 ‘업사이클링’과 ‘지속가능성’이 빠르게 퍼졌는데요. 실제로 밀라노 디자인 위크,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파리 메종&오브제(MAISON & OBJET) 등 유명 가구 전시에서 업사이클링 가구 제품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합니다.

 

© 독일 소재 업사이클링 가구 협동조합 ‘쯔바잇신’_블로그 갈무리

업사이클링 가구, 희소가치를 높여주다 🛏️

이미 세계 최대 가구업체인 이케아(IKEA)를 비롯해 다국적 가구 브랜드 상당수는 폐목재, 폐플라스틱, 폐금속 등 버려진 자원을 가구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케아는 고객들로부터 자사 중고품을 구매해 다시 판매하는 ‘바이백(Buy Back)’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요. 중고품 중 손상이 너무 심한 제품의 경우 분해해 가구 재료로 재활용한다고 합니다. 또한, 가구 제조업체 에메코(Emeco)는 코카콜라와 협업해 ‘111 네이비 체어(Navy Chair)’를 판매 중인데요. 에메코는 코카콜라가 제공한 폐페트병을 가구 공정에 혼합해, 저렴하고 튼튼한 의자를 생산하게 됐다고 합니다.

가구 업사이클 분야에 대명사인 곳은 독일에 있는 쯔바잇신(Zweitsinn)이란 협동조합입니다. 독일어인 쯔바잇신은 우리말로 ‘두 번째 용도’란 뜻인데요. 도르트문트 공대 환경연구소 내부 프로젝트로 시작된 쯔바잇신은 폐가구를 예술적인 작품으로 탈바꿈시켜 주목받았습니다. 이전까지 업사이클링 가구는 몇몇 디자이너들의 하나의 예술품으로 인식됐는데요. 쯔바잇신은 소비자 수요에 맞춰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고자 지역 내 가구 디자이너, 제조업체 등을 조합으로 연결시켰죠. 한때 이 네트워크에 소속된 디자이너만 수백 명에 달했고, 대량 생산 덕에 소비자 눈높이에 맞는 가격 수준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쯔바잇신은 온실가스 배출저감 정보 등 친환경 메시지를 담은 제품을 선보여 일반 가구와 차별화 부각했는데요. 안타깝게도 현재는 폐업한 상태라고 전해졌습니다.

 

© 순환경제 가구 콜렉션 예시_Francisco

현재 업사이클링 가구 제조에 적극적인 곳은 유럽 내 가구 디자인 및 제조업체들입니다. 2018년 5월 유럽연합(EU)이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순환경제 패키지’를 최종 승인하며, 관련 업계들도 이에 적응하려는 중인데요. 가구 업계의 경우 지속가능한 소재를 재활용 혹은 재사용하고, 부품 수리가 쉽도록 설계하며, 동시에 포장폐기물 및 환경 오염 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중입니다.

실례로 스페인에 본사를 둔 비카르베(Vicarbe)란 가구 제조업체는 고객이 구매한 가구가 고장이 날 경우 새 제품으로 교체하는 대신 수리를 통해 가구 수명을 연장해주는데요. 애초에 가구 설계에서부터 부품 교체가 쉽도록 각별히 신경 쓴다고 합니다. 또 폐플라스틱, 폐목재 등 버려진 자원을 가구 자재로 사용 중인데요.

 

© (왼) 버려진 패딩으로 만든 소파 / (우) 버려진 낙하산을 재활용해 만든 가구

이밖에도 버려진 낙하산, 단단한 씨앗, 전자 폐기물 등 미처 생각하지 못한 쓰레기를 가구로 탈바꿈 시키는 시도가 젊은 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 진행 중입니다. 영국 소재 레비타스 디자인(Levitas Design)이란 기업은 침대 프레임에 재활용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했으며, 스테판 켄이란 미국 디자이너는 전쟁 후 버려진 군용 천막을 재활용한 빈티지 업사이클링 가구를 내놓기도 했죠.

 

순환경제 기여할 업사이클링 가구 어디까지 왔나? ♻️

찹밸류(ChopValue)란 캐나다 스타트업은 버려진 나무젓가락을 수거해 인테리어 선반이나 책상 등을 만들고 있는데요. 현재까지 약 3,300만 개 이상의 나무젓가락을 재활용했다고 합니다. 또 네덜란드의 한 사회적 기업은 배를 타고 운하를 돌며 플라스틱을 수거하는 경험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판매 중인데요. 이렇게 모인 플라스틱을 가구 제조업체인 베파(Vepa)에 넘겨주며, 업체는 폐플라스틱을 가지고 사무용 의자나 보트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죠. 지난해 알렉산더 슐이란 제품 디자이너는 먹고 버린 요거트 통을 수거 후 녹여 의자를 만들었는데요. 한 사람의 쓰레기가 다른 이에게는 보물이 될 수 있단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례가 국내외 할 것이 넘쳐납니다.

 

© 감자 껍질을 이용해 만든 식탁 덮개_Studio Traccia, 홈페이지

최근 가구 디자이너들은 식품 폐기물을 가구로 업사이클링 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스프레소 샷 추출 후 나온 커피 찌꺼기,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 감자나 옥수수 껍질을 분해해 가구로 만들기도 하죠.

앞서 언급한 스튜디오 트라치오는 버섯 균사체로 친환경 섬유를 만드는 유명 브랜드 모구(Mogu)의 힘을 빌렸는데요. 버려진 옥수수 껍질과 해초, 볏짚, 커피찌꺼기, 조개껍질 등 식품 폐기물을 섞어 테이블 윗면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 접시의 경우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도축한 후 발생한 피를 사용했는데요. 이는 바세 슈티트겐이란 네덜란드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응고시킨 피를 분말화해 고열에 다시 재가공해 만들었다고 하죠. 접시 아래 받침대는 달걀 껍질과 같은 폐기물에서 칼슘을 뽑아내 만들었고요. 식탁 깔개는 버려진 과일과 채소 껍질로 만들어졌는데요. 껍질에서 셀룰로오스를 추출해 실을 짜는 방식으로 만들었는데요.

루이지 올리비에리 스튜디오 트라치오 CEO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플라스틱, 석유, 공산품, 철강 등은 재활용을 시도하는 반면, 식품 재활용을 탐구하는 곳은 많지 않다”며 식품 폐기물 재활용과 순환경제에 더 많은 관심을 이끌고자 프로젝트를 준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Curology, Unsplash

디자인은 한 사회의 문화, 정치, 경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 사회가 처한 상황의 단면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죠. 가구 업계에 업사이클링이 떠오른 이유. 지구촌이 순환경제로 전환하려는 중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